장시간 노동 등 최악의 근무 환경으로 유명한 월가에서 은행가들이 마약에 가까운 각성제나 고카페인 에너지 드링크를 먹어가며 성과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에 활용되는 약을 수시로 처방받다가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겨 치료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지경에 도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월가의 다수 은행가가 고강도의 경쟁 속에서 지루하고도 긴 근무 시간을 견디게끔 하는 데 애더럴, 바이반스, 암페타민 등 약물을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약물들은 대부분 ADHD 치료제로 활용된다.
WSJ는 "10여개 은행에서 근무한 전·현직 투자 은행원 5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장시간 근무 등을 견디기 위해 각성제를 활용하는 것이 쉽게 논의되고 눈에 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애널리스트 등 월가에서도 오랜 시간 근무하면서 경쟁에서 버텨야 하는 저연차를 중심으로 이러한 약물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월가 은행원들은 저연차 직원만 해도 초봉이 20만달러(약 2억9000만원)에 달하는 고액 연봉을 받는다. 이를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최대 주 120시간에 달하는 살인적인 근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특히 저연차 직원들은 장시간 근무에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지난 5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30대 직원 리오 루케나스는 20억달러 규모의 거래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여러 주에 걸쳐 주당 100시간 이상 일하다가 관상동맥에 혈전이 생기면서 사망한 바 있다.
과거 샌프란시스코의 웰스파고에서 일했던 조나 프레이는 WSJ에 한 동료가 공용 공간에서 애더럴 약을 복용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본인도 지인의 추천으로 2020년부터 원격 의료 서비스인 텔라닥을 활용해 각성제를 처방받았다. 처음에는 주 5일 아침에 한 번 복용했다가, 차츰 오후에도 복용하고, 나중에는 주말에도 일하게 되면서 주 7일 복용하는 식으로 복용량을 늘렸다. 그렇게 약물에 중독된 삶을 살았던 그는 2022년 직장을 그만두면서 약 복용을 멈췄고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달 이상 소요됐다고 고백했다.
워싱턴DC의 애센트캐피털에서 일하는 트레버 룬스포드는 지난 7년간 애더럴을 복용해왔다고 밝혔다. 일주일 중 일부를 20~22시간 일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약물 없이는 집중도를 유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약물이) 내 삶의 핵심적으로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월가에서 회사를 운영 중인 30대 마크 모란도 크레디트스위스 월가 지점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약을 먹었다고 한다. 2016~2019년 병원을 직접 방문했던 그는 약물 비용으로만 5000달러 이상을 지출했고, 내성으로 인해 약물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도 놓였다고 한다. 그는 월가 인근의 의료시설에서 의료진이 계속해서 약 처방량을 늘리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문제를 깨달았고 결국 약 복용을 멈췄다고 WSJ에 말했다.
월가의 은행가들이 각성제로 하루를 버티는 건 요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월가에서는 마약의 일종인 코카인을 활용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는 주인공과 친구들이 탁자에 하얀 가루를 놓고 코로 흡입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했다. WSJ는 "애더럴과 바이반스는 ADHD 치료제로 종종 사용되지만, 오남용 가능성으로 인해 코카인, 오피오이드와 동일선상으로 분류된다"고 전했다.
월가의 은행원들을 환자로 대하는 뉴욕 정신과 의사인 새뮤얼 글레이저는 "(이러한 약물의 장기 복용으로 인한 영향이)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면서 이후 위험한 약물을 찾는 관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환자 중 다수가 마치 종합 비타민을 먹는 것처럼 각성제를 복용하려 한다"며 월가의 엄청난 경제적 보상이 성과를 개선하려는 은행원들로 하여금 약을 복용하게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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