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부호' LVMH 회장을 법정에 서게 한 남자

언론인·영화감독 출신 프랑수아 뤼팽 佛 의원
"LVMH 비판 영화 제작에 전 정보국장이 사찰"
아르노, 법정서 "작고한 측근이 벌인 일"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형사법원에 세계 5위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색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나타난 그는 재판이 진행되는 3시간여 동안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판사 앞에서 증언했다. 재판 중 미소를 짓고 유머 섞인 증언을 내놓으면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형사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 참석 중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사진 가운데)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형사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 참석 중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사진 가운데)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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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이 자리에서 아르노 회장에게 '프랑수아 뤼팽'과 만나 일대일로 토론을 한 적 있냐고 물었다. 아르노 회장은 '없다'고 답했고, 방청석에 있던 뤼팽이 인사를 건넸다. 아르노 회장은 "당신에게 커피 한 잔과 감자튀김 한 접시를 대접하게 된다면 영광일 것"이라며 "영화나 경제, 대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유쾌하게 반응하는 듯 보였으나 아르노 회장은 수년간 이어진 이 재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가 증인으로 참석한 이 재판은 베르나르 스콰치니 전 프랑스 국내보안국(DSGI) 국장에 대한 재판이었다. 스콰치니 전 국장은 재임 중 아르노 회장의 부적절한 사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협박범을 잡으라고 부당 지시하고, 퇴임 후에는 LVMH에 비판적인 좌파 인사를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여기서 사찰당한 인사가 바로 뤼팽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아르노 회장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뤼팽과 맞섰다며 그동안 벌어진 일을 정리, 보도했다. 이 재판은 2019년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콰치니 전 국장이 받는 혐의는 공적 자금 남용, 민간인 사찰 등 총 11개다.


사찰 대상이었던 뤼팽은 현직 프랑스 국회의원이다. 언론인 겸 영화감독 출신인 그는 2015년 LVMH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사합니다 사장님!(Merci Patron!)'을 제작했다. 영화에는 아르노 회장이 LVMH 공장을 폐쇄하고 일감을 아웃소싱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의 직원이 해고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는 이듬해 프랑스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세자르상을 수상했다.


세계 최대 명품 제국인 LVMH는 아르노 회장이 35세이던 1984년 단돈 1프랑에 크리스챤 디올의 모기업인 섬유 기업 부삭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아르노 회장은 일자리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이를 어겼다는 것이 뤼팽 의원의 설명이다. 영화 제작에 앞서 신문사를 운영 중이던 뤼팽 의원은 LVMH에서 해고된 직원들을 모아 사측의 사과를 받으려 시도했고 2013년부터 영화를 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제작된 전단지가 아르노 회장의 손에 들어갔다.

언론인 겸 영화감독 출신의 프랑수아 뤼팽 프랑스 국회의원 AFP연합뉴스

언론인 겸 영화감독 출신의 프랑수아 뤼팽 프랑스 국회의원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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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2012년 스콰치니 전 국장이다. 2008~2012년 DGSI 국장을 지닌 그가 퇴임 후 사설 기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르노 회장의 비서가 직접 연락하면서 뤼팽 의원에 대한 사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수사 당국은 이 과정에서 정보국 수장으로 일할 때 만난 정부 인맥을 동원해 뤼팽 의원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 감시 활동을 벌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또 DGSI 국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8년 아르노 회장의 부적절한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협박범을 잡으라고 DGSI 소속 요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이미 퇴임 전부터 스콰치니 전 국장과 LVMH의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콰치니 전 국장은 아르노 회장의 사회적 위치와 재산 등을 고려해 당시 협박 사건을 국가안보 사안으로 판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콰치니 전 국장이 행한 모든 혐의와 관련해 아르노 회장은 2018년 작고한 피에르 고데 전 LVMH 부회장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며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항변했다. 아르노 회장은 "그저 증인으로 이 자리에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아르노 회장은 2021년 재판부에 1000만유로(약 151억원)를 지불하는 대가로 자신에 대한 수사를 종결시키는 내용의 합의를 맺고 기소를 피해 간 상태다.


재판 내내 침착한 듯 보였던 아르노 회장은 뤼팽 의원의 변호인이 질의를 시작하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영화에서 LVMH를 "대량해고와 아웃소싱의 챔피언"이라고 묘사한 부분을 두고 "완전 거짓"이라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아르노 회장은 "그(뤼팽 의원)는 (2017년 정치인이 된 이후)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냐"며 LVMH는 전 세계적으로 20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그중 20%가 프랑스에 있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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