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가 위치해 있는 자바섬은 매해 가라앉고 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주민들의 지하수 사용이 많고, 퇴적 지형인 탓에 지반 침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 상승까지 이뤄져 바닷물이 넘어오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토 침몰을 막기 위해 해안 일대에 대방조제를 쌓고 강에 다목적댐을 건설하는 등 분주하게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이같은 사업 중심에는 한국 기술력이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카르타 북부 해안 일대에 대방조제를 쌓기 위해 최근 몇 년간 '자카르타 수도권 해안종합개발사업(NCICD)'을 추진했고, 한국농어촌공사가 2016년 외해 방조제(21㎞) 타당성조사 및 기본설계를 맡게 됐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기존에 네덜란드와 추진하려던 사업이지만 새만금 사업 경험이 풍부한 우리나라 기술력을 앞세워 농어촌공사가 적극적인 영업을 펼친 결과 3국이 협력하는 사업으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지난달 26일 대방조제가 들어설 자카르타 북부 해안가 플루이트 마을에 가자 사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해안가에는 길게 뻗은 도로를 따라 1m가 넘는 둑이 설치돼 있었다. 기존에는 높이가 낮았지만 여러 번 덧대 쌓아 올린 흔적이 가득한 둑이었다. 둑 너머에는 바닷물이 곧 넘어올 것처럼 넘실거렸다. 이날 현장을 찾은 기자단과 동행한 남호성 농어촌공사 글로벌사업처 부장은 "5년 전만 하더라도 둑 너머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며 "이곳에 올 때마다 수면이 빠르게 오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방조제는 길이만 33㎞에 높이는 20m 규모로 해안가를 따라 길게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책정된 사업비만 20조원에 이른다. 대방조제를 쌓으면서 생기는 매립지를 통해선 추가적인 도시 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다. 아직 본격적인 사업 추진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다 보니 우려도 나오지만 현지 개발 의지가 상당하다는 게 농어촌공사 설명이다. 최근 현지에선 대방조제 사업을 두고 '국가 40년 생존의 문제'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10월 새로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역시 해당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어 희망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2030년이 되면 북부 자카르타의 90% 면적(1만2500㏊)이 해수면 아래 위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기존 계획에 더해 추가로 자바섬 북부 해안 일대로 사업 영역을 넓혀 대방조제를 쌓으려고 구상하는 배경이다. 이 경우 사업비는 약 100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현재는 대방조제 기본 설계를 담은 보고서가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보고된 상태로, 앞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농어촌공사뿐 아니라 한국 민간 기업도 매립지 개발 사업 등을 뛰어들어 먹거리를 늘릴 수 있게 된다. 남 부장은 "인도네시아 입장에선 대방조제를 설치하고 매립지를 개발하게 되면 교통 정체를 완화하고 인구를 분산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인도네시아 다목적댐으로 완공을 앞둔 까리안댐도 자카르타 지반 침하를 막을 주요 거점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2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3시간여를 달려 자바섬 반텐주에 있는 까리안댐을 찾았다. 까리안댐 근처에 도착한 뒤 도로 양쪽으로 빼곡하게 팜나무가 들어선 길을 차로 달려 가니 시야가 탁 트일 정도로 넓게 조성된 댐 부지에 다다랐다. 댐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고, 댐 너머를 멀리 바라보니 동남아시아 특유의 울창한 숲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까리안댐은 자카르타 남서부에서 약 100㎞ 떨어진 반텐주를 관통하는 찌우중강 지류에 있다. 규모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댐 시설이다. 길이 516m, 높이 63m로 저수 용량은 3억1500만㎥에 이른다. 우리나라 팔당댐 규모와 비슷하다. 까리안댐은 댐과 부댐, 지주탑, 가배수 터널 등으로 이뤄져 있다. 2013년 시작된 공사로 현재 주요 시설이 완공된 상태이며 조경 등의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 담수를 시작해 지난달 기준으로 79%까지 물이 찼다.
까리안댐은 우리나라 기술과 자본이 투입됐다 보니 현지뿐 아니라 국내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100년이 넘는 한국 댐 기술력을 토대로 2014년 까리안댐 수주에 성공해 설계와 감리를 맡았고, DL이앤씨는 현지 국영 회사와 컨소시엄을 맺는 형태로 댐 건설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길이가 좁고 깊은 강 지형에 맞춰 여러 댐이 건설됐다면, 까리안댐은 너비가 길고 깊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농어촌공사는 우리나라처럼 강 규모가 크지 않은 인도네시아 지형 특성을 반영해 까리안댐을 설계했다.
까리안댐은 앞으로 자카르타와 반텐주에 각종 용수를 공급하는 데 있어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400만명이 사는 자카르타 서부 지역 식수를 책임질 뿐 아니라 댐 인근에는 농업 용수를 공급할 예정이다. 지하수 사용이 과도해 지반 침하를 걱정하는 인도네시아로선 필수적인 사업일 수밖에 없다. 최낙원 농어촌공사 글로벌사업처 까리안댐 단장은 현장에서 "자카르타 주민의 60~70%가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며 "과다 사용으로 지반 침하와 해수 유입이 반복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업으로 다목적 용수를 공급한다면 지반 침하를 완화할 수 있다"며 "이것이 우리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까리안댐은 홍수 조절을 통해 재해를 방지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또 1.8㎿ 규모의 소수력 발전도 계획에 있다. 댐 주변의 조경 시설을 통해 댐을 지역 관광지로도 키울 수 있다. 농어촌공사는 이미 인근 주민들이 오토바이 등을 타고 와서 주변을 구경하며 쉬다 가는 명소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대가 높아 인근 지역보다 기온이 낮고, 오후가 지나면 댐 일대가 선선해지기 때문이다. 대규모 댐을 본 적이 드문 현지 주민들에겐 댐 자체도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계획이 실현하려면 남은 과제들이 있다. 까리안댐이 가동 준비를 마쳤더라도 50㎞ 떨어진 자카르타로 식수를 공급하려면 도수로가 개설돼야 한다. 현재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민관합작투자사업(PPP)을 추진하고 있지만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해당 도수로 건설만 마무리된다면 까리안댐은 곧바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농어촌공사는 앞으로 자카르타 북부 해안 대방조제뿐 아니라 까리안댐 등 각종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현지에서 K-기술력 위상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현지에서 만난 오영인 농어촌공사 인도네시아사무소장은 "앞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농어촌공사 기술력(K-농공기술)을 펼칠 수 있는 사업을 많이 발굴하겠다"며 "사업을 많이 만들어서 농어촌공사가 깃발을 들고 민간 엔지니어링 기업들 모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도 많이 발굴하면 국내 기업들이 참여할 공간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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