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의 책상 위엔 '선착의 효'란 이름의 책이 놓여있다. 한국 반도체와 첨단산업의 국가 전략을 다룬 책이다.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이 담긴 반도체특별법 통과에 대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착의 효는 바둑 용어로 '먼저 두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고 의원은 2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매 순간 너무 깊게 생각해서 늦게 시작하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며 반도체와 첨단전략산업 발전을 위한 선착의 효를 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통과가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야당 설득 전략은?
11월은 이미 지나갔다. 다음 주 월요일(9일)에 또 법안 소위원회가 열린다. 솔직히 그때 반도체특별법을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관련된 모든 분이 노력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앞에 나가 의원들에게 (반도체 관련) 법안을 설명했다. 의원 단체 채팅방에도 관련 자료를 올릴 것이다.
야당에선 탄력근로 등 예외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특별법에 이 조항을 넣으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맞지만, 그게 현재의 반도체 연구개발 업무에 얼마나 적합하지 않은 것인지 다음 법안 소위 때 더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3개월 단위로 주 52시간 근무를 한다. 그런데 단서 조항이 근로일 간 11시간 휴식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거다. 내일 아침 8시에 회의가 있으면 오늘 저녁 9시 전까지는 무조건 퇴근하라는 말인데, 무조건 밤새워서 일하라는 게 아니라 퇴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서 근로 시간이 줄어든 효과도 있었다. 법이 통과되면 예외 조항을 적용받을 사람들도 실제로 이 규제를 풀어주길 원한다고 보는가?
반도체특별법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근로자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임을 분명히 했다. 설계와 연구개발 업무를 하는 고소득자다. 연봉으로 치면 1억4000만원 정도, 직급으론 중·고참 과장급 이상이다. 그런데 그 인력이 반도체 연구개발·설계 인력 중에서 10%도 안 된다.
기업인 출신으로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느낄 때도 있나?
발목을 잡는다기보다 정치는 인공지능(AI)이 촉발한 가파르게 높아지는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는데 늦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야 입장이 다를 수도 있고, 야당은 민주노총 눈치도 좀 봐야 하지 않나. 이해는 하지만 청년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반도체 같은 경우는 종아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는 건 좀 빨리 풀어주는 게 맞지 않나. 반도체는 옛날부터 산업의 쌀이라고 했지만, AI 시대 반도체는 쌀뿐만이 아니라 밥과 국이 다 될 수 있다.
기업에 오래 있었는데 기업인과 정치인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
크고 작음은 다를 수 있는데,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인은 고객을 바라보고 뛰는 사람이고 정치인은 국민을 바라보고 뛰는 사람이다. 기업인은 매출과 이익으로 결론을 내지만, 정치는 삶의 질과 국민의 행복 지수 등으로 결론이 나는 것 아닌가. 삼성에 있을 때도 후배들이 야근하고 힘들어하면 '힘들더라도 우리가 좀 참자. 우리는 삼성만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라며 독려했던 게 생각난다.
의원이 된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조금 힘들고 흔들렸다. 청년의 미래, 중소·중견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 강화,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에 대한 적극적 배려를 위해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봉사'라는 키워드로는 안 되더라. 그래서 가까스로 찾아낸 키워드가 '헌신'이다. 나를 더 던져야 하겠구나. 헌신이란 키워드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 여기(국회)에서 생활할 때 마음이 좀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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