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80시간 일하는 나라 많은데…韓 6시 강제퇴근, 경쟁력 생길리 없다"[리포트 인터뷰]

김성현 한국국제금융학회장(성균관대 경제대학장) 인터뷰
노동시장 경직성이 기업들 해외로 밀어내 국가경쟁력 약화
반도체 등 해외와 경쟁하는 업종이라도 52시간제 손질해야
노동문제 해결 없이 기업경쟁력 올리기 힘들어

김성현 성균관대학교 교수(경제대학장)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성현 성균관대학교 교수(경제대학장)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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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1.9%로 전망했다. 내후년 전망치는 더 낮은 1.8%다. 잠재성장률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기 저성장 시대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저성장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조선, 철강 등 우리 핵심 산업 대부분이 이미 최대 경쟁국인 중국에 따라잡혔거나 거의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이 같은 기업 경쟁력 약화의 기저에는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한국의 노동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 52시간제 도입과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자에게 너무 유리한 노동관련법 등 각종 노동규제로 인해 기업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하락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인 노·사·정 타협과 노동규제 완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우리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약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성현 한국국제금융학회장(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경제대학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성대 경제대학장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노동시장의 구조개혁 없이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금융 및 거시경제 전문가인 김 교수는 최근 공개한 ‘노동시장 경직성이 기업의 해외 진출에 미친 영향 분석’ 논문을 통해 한국의 과도한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크게 늘고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과도한 노동규제가 노동시장 자율성 해치고 기업경쟁력 약화시켜

김 교수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경직된 것은 강경한 노동조합 때문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에 일괄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 등 노동시장의 자율성이나 유연성을 해치는 정책들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많이 집행된 결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기업 친화적이라고 평가받는 현 정부 들어서도 전향적인 노동시장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현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실현된 정책이 별로 없다”며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노동시장 관련 정책이 재정이나 부동산, 금융시장 등 다른 경제 정책에 비해 뒤로 밀려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당장 시급한 반도체 등 일부 첨단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 역시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그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분야에서 52시간제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며 “반도체만 놓고 봐도 경쟁국들은 근로자들이 주당 80시간 이상 일하는 나라도 많은데 우리나라는 오후 6시만 되면 연구소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니까 집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경쟁력이 생기겠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52시간제도 차별적으로 적용해 첨단산업, 전략산업, 연구개발(R&D)산업 등에서 근로자들이 일하고 싶은 만큼 일을 하고 기업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더 많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래야 기업경쟁력이 살아나고 국가 경제성장률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도한 근로자 보호 역시 우리 노동시장 경직성의 원인이라고도 했다. 그는 “기업들이 한번 직원을 고용하면 사실상 해고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과도하게 보호받는 근로자의 권리가 오히려 기업의 채용을 감소시킨다”며 “해고가 어려우니까 기업들이 처음부터 채용을 꺼리게 되고 이는 좋은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온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차이가 극심해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기업에 고용의 유연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경우 해고와 고용이 자유로운 만큼 많은 채용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직장인들이 더 좋은 직장으로 쉽게 옮기기도 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어난다”며 “우리가 미국만큼 고용 유연성을 늘리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노동정책의 방향성이라도 그쪽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노사화합 이끌어야 경제도 발전

김 교수는 현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노조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정부 들어서 노조와 대화가 끊기고 대립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는데 그래서는 노동시장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노조와 기업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통해 무분별한 파업이라든지, 극심한 노사대립 등 기업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잘 안 보인다”며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는 노동시장 문제를 앞으로 끌어와 문제 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조사해보니 노사관계가 화합적인 기업일수록 국내 시장에 남을 확률이 높았다”며 “기업들이 떠밀리듯이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막고, 국내에 남아 고용과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경직적 노사관계 완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현 성균관대학교 교수(경제대학장)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성현 성균관대학교 교수(경제대학장)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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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성현 교수와의 일문일답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경직성이 유독 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조합의 힘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도 많다. 특히 지난 정부 때 52시간 근무제나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 같은 노동시장의 자율성이나 유연성을 강제하는 정책들이 많이 펼쳐졌기 때문에 노동시장 환경이 기업에 굉장히 불리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의 경직성과도 크게 연관이 있나.

▲인플레이션이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도 당연히 올라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너무 갑작스럽게 오르면서 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에 적응할 시간이 제대로 벌지 못했다. 기업의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것도 노동시장 경직성을 키운다. 기업이 일단 사람을 뽑으면 계속 고용을 해야 하니까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없고 노동시장이 경직된다.


-현 정부는 전 정부에 비해서 기업 친화적이라고 하고, 노동시장 개혁도 하려고 했는데 크게 변화는 없어 보인다.

▲현 정부 들어서도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많이 나온 것 같지 않다. 기업 규제 완화나 노동시장유연화를 위한 정책이 제대로 실현된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법안을 고치는 문제에서는 국회 통과가 안 되기 때문에 지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도 있다.


-국회를 통과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도 별로 안 보이는 것 같다.

▲지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노동시장 관련 정책이 뒤로 밀려 있다. 재정통화정책이나 부동산정책이나, 금융시장 관련 정책, 밸류업 같은 주식시장 활성화 대책, 최근에는 양극화해소 같은 이야기도 나온다. 노동시장 개혁이 우선순위에서 앞으로 더 나와야 한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우리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되나.

▲일단은 연구소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들이 오후 6시만 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니까 집에 가야 한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 반도체 연구소에서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하는 나라들 많다. 그런 나라들하고 경쟁해야 하는데 우리는 6시만 되면 컴퓨터 꺼지고 집에 가야 되는데 경쟁이 될 리 없다. 첨단산업, 전략산업, 연구개발(R&D) 산업 등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서 더 많이 일하고, 돈도 더 벌겠다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52시간제도 차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52시간제를 해도 괜찮은 분야가 있고, 적용하면 어려운 분야가 있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분야에서 52시간제를 일괄적으로 모든 기업에 적용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굉장히 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것도 노동시장 경직성과 같은 맥락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환경이 월급부터 복지까지 굉장히 큰 차이가 난다.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말은 해고가 자유롭다는 의미도 있지만 해고가 자유롭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다니다가 잘하면 얼마든지 대기업으로 올라가고, 이런 식의 사다리 환경이 잘 마련돼야 한다. 그러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는 어느 나라보다 잘 나가는데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도 영향이 있는 것인가.

▲노동시장 유연성도 미국 경제가 잘 나가는 이유 중에 하나다. 미국은 노동시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나라다. 그만큼 노동시장의 제약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조금 아무리 주고 세금 인하해도 노동시장 경직성이 계속 유지되는 한 그런 정책들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어렵다. 그게 한국과 미국의 차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살리려고 해도 기업들이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 미국이 잘 나가는 것은 미국으로 돈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공지능(AI) 혁명을 이끄는 선두주자인 만큼 돈이 몰려드니까 투자도 잘되고, 다른 나라가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분간 미국으로 돈이 몰려들 것으로 본다.


-미국은 해고가 자유롭다고 하는데 해고자에 대한 보호는 어떻게 하나.

▲미국은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금방 잘릴 수 있다.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말이 해고가 자연스럽다는 말이지만 취업이 쉽다는 말과도 같다. 해고를 당해도 금방 다른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경제가 좋으니까 좋은 일자리도 계속 생긴다. 계속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우리 노동시장이 미국을 롤모델로 삼아야 하나.

▲미국은 약간의 극단적인 케이스다. 일본은 그 반대쪽 극단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 쪽에 가까운데 미국만큼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가까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업의 해외투자가 증가하면 국가경쟁력이 감소하나.

▲기업이 해외에 나가면 일단 첫째로 국내 고용이 안 좋아진다. 예컨대 한국에 공장 지을 것을 동남아시아에 지으니까 고용이 그쪽으로 간다. 투자유출도 일어난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선진국에 해외투자를 늘리면 그쪽의 선진 기술을 쉽게 배울 수도 있다. 다만 기업들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서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라 임금이나 노사문제로 떠밀려서 나가는 것은 기업이나 국가에 손해다.


-정부의 리쇼어링(국내 복귀)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세금감면이나 보조금만 주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노동시장 경직성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쉽지 않다. 노사관계가 어려운데 기업 입장에서는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노조와 대화를 통해서라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고 해서 일단 파업이나 데모를 안 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거를 지금 하는 사람이 없다. 현 정부의 기조가 노조와 협상이 없다는 것인데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를 위한 가장 시급한 조치는 무엇인가.

▲52시간제 완화, 최저임금 차등지급 등이 있지만 현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노사관계를 완화시키는 것이다. 기업에서 해결 못 하는 것을 정부가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 그런 쪽은 진척이 별로 없다.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묘수가 있나.

▲일단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 문제가 화두에 올라야 한다. 지금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기 때문에 정부가 순위를 앞으로 끌어 올리고, 국회에서도 기업을 위한 노동시장 환경개선 쪽에서 논의를 많이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당선 이후 내년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

▲일단 공약인 만큼 관세는 올릴 것으로 본다. 다만 일괄적으로 올리지는 않을 것 같고 품목별로 다르게 할 것 같다. 하지만 관세정책은 모두가 지는 게임이다. 미국에도 안 좋다. 트럼프가 특정 산업을 살리려고 관세정책을 하는데 그 특정 기업에만 유리하지 미국 전체에는 안 좋다고 본다. 미국 소비자들은 오히려 과거보다 비싸게 물건을 사야 한다.


-트럼프 2기를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와 기업인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근본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업이 어떤 악조건하에서도 성장할 수 있게 내실화를 해야 한다. 생산성도 높여야 하고, 비용절감이나 생산효율화 등을 통해서 기업이 생존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정부도 외부 충격에 대비해서 어떤 정책으로 기업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적절한 산업정책이나 재정금융정책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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