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정부 예산안 증액 없이 삭감만 한 ‘감액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여당과 야당, 정부 간 협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감액 예산안’ 처리 가능성도 있다. 야당은 왜 이렇게 사상 초유의 ‘강공’에 나선 것일까.
2일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여당과의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정부가 짠 예산안 677조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을 감액한 673조3000억원 규모의 예산안 처리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동안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현실화한 적이 없었던 야당의 예산안 처리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그동안 유명무실해졌던 국회 예산심의권을 회복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한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를 맡은 허영 민주당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예산안 법정시한인) 2일까지 정부나 대통령실은 (국회의 심의 권한인) 감액에 대해서는 적극적인데 (정부가 동의해줘야 하는) 증액에 대해서는 자동부의 조항을 믿고 끝까지 연기하며 구체적인 답변을 주지 않았다"면서 "예결위가 있음에도 한 달간 열심히 여야가 마주 앉아 협상한 것이 하루 차이로 무용지물이 되는 구태와 결별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법정 기한을 지키고 여야 가 합의한 감액안을 처리해 국회 심의권을 보여주자는 결의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야당은 법정기한 이후에도 예산안과 세법을 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을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국회법에 대해 예산안이 늦어질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언급하고 있다. 야당으로서는 위력 시위를 벌여 정부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여야는 예결위 예산조정소위원회에서 논의를 통해 증액 관련 의견을 상당 부분 개진한 바 있다. 예결위 관계자는 "증액 관련해 여야가 상당한 의견을 제시해왔다"며 "여야 간 추가 협상이 진행된다면 이 부분을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년 추가경정예산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 성격도 지니고 있다. 야당에서는 내년도 경제 전망이 좋지 않은데다, 정부가 공식 부인했지만, 추경을 시사한 바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달 추경 편성 가능성 등이 논란이 됐을 때 대통령실은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배제하지 않으나, 내년 초 추경으로 시기가 정해진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적극 재정으로 방향 전환을 검토함에 따라 재정 건전을 표방한 올해 예산안을 보완할 예산안을 추가 편성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구에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 정책 기조의 전면전환이 꼭 필요하다"며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본적 사고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요 사정기관에 대한 특수활동비 등을 삭감해, 총선 이후 정부 기관에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등으로 복지부동 양상을 보이는 정부를 뒤흔들려 한다는 것이다. 야당이 협상으로 예산안을 풀지, 감액 예산으로 실력 행사에 나설지에 따라 야당의 의도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30일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건희·윤석열 규탄 및 제5차 국민행동의날’ 행사에서 "6개월 안에 승부를 보자"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파국을 피해 오는 10일 처리를 데드라인으로 삼고, 추가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은 여러 협상 채널을 통해 협상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감액 예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민주당은 예결위 날치기 처에 대해 국민과 정부 여당에 사과하고 감액예산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며 "예결 강행처리 후 이를 지렛대 삼아 무리한 야당의 예산 증액 요구 수용을 겁박할 목적이라면 그런 꼼수는 아예 접으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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