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증시에서 매도로 일관했던 국민연금이 포지션을 바꾸고 본격적인 순매수에 나섰다. 연말에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맞추는 '자산 리밸런싱(운용하는 자산의 편입 비중을 재조정하는 일)'의 일환이다. 수익률 제고가 최우선인 국민연금으로서는 현재 국내 증시가 가격 측면의 매력이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의 자산 리밸런싱은 해외도 주목했다. 28일 주요 외신은 "최근 몇 주간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도하며 원화가치 하락을 방어하고 있다"며 "전술적 헤지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보도했다. 국민연금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연금은 최근 상대적으로 디스카운트된 국내 주식을 본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며 "당분간 해외 투자는 쉬어가는 분위기이며 환 수요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외신과 외환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원·달러 환율 1400원 근방에서 달러를 매도했다. 구체적인 매도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상당한 금액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투자전략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끼치자 해외가 그 이유에 대해 주목하는 분위기다.
갑작스러운 달러 매도의 이유로는 자산 리밸런싱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연금은 사전에 정해둔 계획에 따라 매년 연말까지 자산군 비중을 목표치에 최대한 가깝게 운용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8월 기준 국민연금의 자산군별 비중에서 국내 주식은 13.2%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목표 비중(15.4%)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금액으로 계산하면 약 17조원이다. 현재 비중이 전략적 자산배분 허용범위(±3.0%포인트)의 하단에 있다. 그만큼 매수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반면 당분간 쉬어갈 것으로 보이는 해외주식(34.2%)과 대체투자(15.8%)는 목표 비중보다 각각 1.2%포인트, 1.6%포인트 높은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9월 국내 증시에서 총 5284억원을 순매도했다. 국정감사를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개인투자자로부터 '국내 증시의 주적'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연말에 포지션을 매도에서 매수로 180도 바꾸면서 부진한 코스피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자산 가격이 하락했을 때 사들여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투자이지만 전체 증시로 보면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실제로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 등'은 11월1일부터 28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2조2217억원을 순매수했다. '코로나 폭락장'이었던 2020년 3월의 3조286억원 이후 56개월 만에 최대 규모의 연기금 순매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투자주체에서 '연기금 등'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을 뜻한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