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가 오너 3세를 잇달아 전진 배치하며 차세대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 오너일가를 내세워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동시에 승계를 위한 준비에 돌입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만 검증 절차 없이 초고속 승진하며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우려도 적지않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 오너 3세로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31)은 지난 25일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2019년 3월 경영기획팀 사원으로 입사한 지 5년여만의 초고속 승진이다. 앞서 신 전무는 2020년 대리로 승진한 뒤 경영기획팀 부장, 구매 담당 상무를 거쳤다. 올해 1월부터는 미래사업실을 이끌어왔다. 농심 측은 신 전무 승진과 관련해 "회사의 성장 방향과 확장을 결정하는 중추적인 업무를 맡기자는 취지로 농심의 비전을 만드는 미래사업실 전무 승진이 결정됐다"고 했다.
이번 인사에서는 신 전무의 누나인 신수정 음료 마케팅 담당 책임(36)도 상품마케팅실 상무로 승진했다. 농심 관계자는 "주스 브랜드 '웰치'를 담당하면서 매출 성장을 이뤄내 승진 대상에 올랐다"며 "상품마케팅실에서 글로벌 식품 기업과의 협업을 강화해 농심의 글로벌 사업 확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들 남매 승진에 관해 3세 경영이 속도를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신 전무는 현재 지주사인 농심홀딩스 지분 1.41%를 보유하고 있다. 신 상무 지분은 0.34%다. 아버지 신동원 회장(42.92%)이 최대주주이며 삼촌 신동윤 율촌화학 회장(13.18%), 고모 신윤경 씨(2.16%), 재단과 사내 기금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30) 역시 회사 경영 전면에 나선 오너 3세다. 그는 부친인 전인상 전 삼양식품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예상보다 일찍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2019년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해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상무 자리에 올랐다.
삼양라운드스퀘어가 최대 주주인 삼양식품 은 '불닭볶음면'의 고공행진으로 매 분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창사 이후 첫 매출 1조원과 10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 역시 해외매출(6211억원)이 국내매출(1890억원)보다 3배 뛰어 넘었다. 전 본부장은 삼양라운드스퀘어 지분 24.2%를 보유하고 있다. 전 본부장의 모친인 김정수 부회장이 32%로 최대주주이며, 전 전 회장이 15.9%를 갖고 있다.
오리온 도 3세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 담철곤 회장의 장남인 담서원 상무(35)는 올해 앞서 오리온이 해외법인을 통해 지분을 인수한 리가켐바이오 사내이사로 합류했다. 담 상무는 2021년 7월 오리온의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핵심 부서인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해 1년 5개월 만인 이듬해 12월 인사에서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담 상무는 지주사 오리온홀딩스 지분 1.22%와 2018년 증여받은 오리온 지분 1.23%도 갖고 있다.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 장남인 김오영 전무(38)도 내수 성장의 한계에 직면 가운데 해외 시장 공략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 전무는 2021년 매일유업 생산물류 혁신담당 임원(상무)으로 입사한 뒤 2년 6개월 만인 지난 4월 전무로 승진했다. 업계에선 김 전무가 물류 비용을 줄이면서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매일유업의 운반비는 약 494억원으로 전년(약 525억원) 대비 약 5.8% 감소했다. 김 전무는 매일홀딩스와 매일유업 지분도 0.01%씩 갖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34)도 해외 사업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올해 두 차례 인사에서 역할 확대나 승진은 없었으나, 회사의 글로벌 식품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회사 역시 이 실장의 영역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현재 CJ는 회사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바이오사업부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매각으로 확보한 실탄은 식품 사업 경쟁력 강화에 쓰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또 CJ제일제당은 최근 헝가리와 미국 사우스다코타에 K-푸드 신규 공장 건설을 확정했다. 헝가리와 미국 신규 공장을 통해 해외 사업 매출을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으로 읽히고 있다. 현재 이 실장은 CJ주식회사(3.2%), CJ올리브네트웍스(15.84%), CJ E&M(0.68%) 등의 지분도 가지고 있다.
반면 검증 절차나 성과 없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가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나오면서 오너 3세의 조기 등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빙그레 오너가 3세 김동환 사장(41)은 2021년 1월 임원으로 승진한 뒤 올해 사장으로 승진했으나, 최근 경찰관 폭행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 사장은 현재 출근하지 않고 자택에서 자숙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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