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나치 도적 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동물이 있다. 무려 개체 수 200만마리에 달하는 라쿤이다. 원래 독일에는 라쿤이 살지 않았지만, 나치 독일 시절 수입된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역사가 겸 작가인 마크 펠튼 박사는 일명 '나치 도적 떼'로 취급받는 독일 라쿤 소동을 소개했다. 라쿤은 북미 대륙에서 서식하는 동물이지만, 괴링이 독일로 수입한 뒤 개체 수가 불어나 현재는 전국에 200만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펠튼 박사에 따르면 독일 당국은 매년 20만마리가 넘는 라쿤을 사냥, 개체 수 조절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라쿤은 영악한 데다, 독일 내에는 마땅한 천적도 없어 계속 세가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펠튼 박사는 "수입한 외래종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펠튼 박사의 거주지인 영국 여러 지역에도 먹이사슬의 상위권에 끼어든 외래종 동물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라쿤은 공격성이 유독 심해 종종 인간을 습격하는 데다, 시골의 텃밭을 망치거나 독일 자연을 파괴하는 등 심각한 민폐를 끼치는 게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라쿤은 어쩌다가 미국에서 독일까지 수입됐을까. 놀랍게도 '라쿤 침입'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치 독일 시절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심복이자 국가 실권자였던 헤르만 괴링은 '사냥 마니아'이자 동물 수집가였다. 그는 당시 독일에선 이국적인 동물이었던 라쿤을 개인적으로 수입해 길렀는데, 이런 그의 정책이 현재의 '라쿤 침공'에 일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쿤의 개체 수가 갑자기 불어난 원인은 따로 있다. 라쿤은 1920년대 독일의 한 모피 농장에 수입됐고, 이들 중 일부가 1934년 처음 야생에 방사됐다고 한다. 이후 천적인 늑대의 개체 수가 독일에서 급감하면서 라쿤은 '야생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했고, 온갖 파충류와 양서류의 씨를 말리며 번식했다.
라쿤 때문에 몸살을 앓는 독일 당국은 최근 '특단의 조처'로 대응하고 있다. 매년 사냥하는 라쿤을 소시지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CNN 방송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베를린 근교 마을인 '카데' 한 정육점은 폐기되던 라쿤 고기를 갈아 소시지, 살라미 등으로 만들어 판매 중이다.
해당 정육점 주인은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라쿤 사냥이 허용되면서 버려지는 라쿤이 많다"라며 "친환경 국제식품박람회에 내놓을 제품을 고민하다가 라쿤 소시지를 생각했다"고 전했다. 라쿤 소시지의 맛은 일반 소시지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며, 이색 상품으로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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