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 민주노총 등의 서울 도심 집회에서 경찰이 폭력진압을 했다며 이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더불어민주당 등 5개 야당의 항의 방문이 이뤄졌다. 민주당 박주민·박홍배, 조국혁신당 정춘생, 진보당 윤종오, 사회민주당 한창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주권의 원칙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직후 조지호 경찰청장과 50분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조 청장은 “절제된 공권력의 행사였다”면서 “사전 정보에 의해 폭력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날 의원 측의 계속된 사과 요구에도 조 청장은 “치안 책임자로 강한 책임감도 느끼고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면서도 “계속 불법집회를 이어가서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지난 9일 민주노총 등이 주최한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 집회 과정에서 11명(조합원 10명·시민 1명)의 참가자가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은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한 혐의를 받는다. 민주노총이 불법행위를 사전 기획했다고 보고, 양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집행부에 대한 내사도 벌이고 있다.
조 청장의 사과 거부가 거듭되자 야당은 경찰 예산을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더니 권력의 몽둥이가 돼 민중을 향해 휘둘리는 행태를 반드시 뜯어고치겠다"며 "예산 심사 과정에서도 이런 점을 명확하게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는 현실이 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내년도 경찰청 기동대 운영 및 관리 예산 35억1400만원과 특수활동비 31억6700만원이 삭감됐다.
특히 마약 거래 위장수사 등 기밀 유지가 필요한 범죄 수사에 사용되는 특수활동비가 전액 삭감되면서 수사 기능 경찰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보 및 사건수사 등에 직접 쓰이는 경찰 특활비를 없앤 것은 최근 국회에서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위장수사를 허용하는 등 경찰의 수사 범위 확대 기조와 배치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다만 조 청장을 향한 경찰 내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예산 삭감으로 인해 볼멘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조 청장의 확고한 사과 거부에 공감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일선 경찰관은 “예산이 삭감돼 운영이 어려워지긴 하겠으나 14만 경찰의 수장으로 제대로 된 대응을 했다”면서 “수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을 보여야 우리처럼 현장에서 뛰는 경찰관들도 원칙에 맞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찰 고위관계자는 “예산 삭감을 빌미로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들에게 경찰청장이 휘둘리지 않는 모습에 직원들의 사기도 올라갔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제 취임 100일을 갓 넘긴 조 청장에 대한 지금까지의 여론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사태를 대하는 방식은 14만 경찰들의 지지를 받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조 청장의 뚝심이 동료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얻은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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