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대장주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의 인공지능(AI) 메모리칩 납품을 최대한 빨리 승인하기 위한 작업에 나선 것으로 밝혀지면서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AI 반도체 랠리에 올라타 실적 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홍콩 과학기술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블룸버그TV와 만나 "삼성전자의 AI 메모리칩 납품 승인을 위해 최대한 빨리 작업 중"이라며 삼성전자로부터 5세대 HBM인 HBM3E 8단과 12단 모두 납품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부가·고성능 제품으로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됐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HBM3E 8단·12단 모두 양산 판매 중"이라면서 "주요 고객사 품질 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확보했고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전망"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엔비디아의 삼성전자 HBM3E 제품 최종 승인이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업계에서는 조만간 본격적인 납품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블룸버그는 황 CEO가 최근 3분기(8∼10월)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 공급업체로 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을 언급하면서도 삼성전자는 거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황 CEO는 앞서 3월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전시된 HBM3E 실물에 '젠슨 승인'(JENSEN APPROVED)이라는 문구와 함께 친필 사인을 남겨 삼성전자의 HBM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으나, 이후 품질 테스트 통과가 지연되며 오히려 시장에 실망감을 안겨줬다.
AI 시장의 '큰 손'인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로부터 HBM 물량 대부분을 공급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4세대인 HBM3를 사실상 독점 공급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HBM3E 8단도 업계 최초로 납품하기 시작했다. 엔비디아의 블랙웰 출시를 계기로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AI 동맹은 더 굳건해지는 모습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4일 열린 'SK AI 서밋'에서 "엔비디아는 새로운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나올 때마다 SK하이닉스에 더 많은 HBM을 요구한다"며 "지난번 젠슨 황 CEO와 만났을 때 HBM4 공급을 6개월 당겨달라고 해서 해주겠다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53%)를 필두로 삼성전자(38%)와 미국 마이크론(9%)이 뒤를 이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랠리에 올라타기 위해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해야 하며, 엔비디아로서도 가격 협상력과 수급 등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의 HBM 공급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 기술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HBM 개발팀을 신설하는 등 HBM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주요 고객사의 차세대 GPU 과제에 맞춰 HBM3E 개선 제품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기존 HBM3E 제품은 이미 진입한 과제용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개선 제품은 신규 과제용으로 추가 판매해 수요 대응 범위를 늘려갈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내 해당 제품의 양산화를 위해 고객사와 일정을 협의 중"이라고 공개했다. 6세대인 HBM4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 중이며, 맞춤형(커스텀) HBM 사업화를 위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선두주자인 TSMC와의 협력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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