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에테제네랄(SG) 사태' 1심 재판이 1년 반의 법정 다툼 끝에 마무리 수순이다. 라덕연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가 받는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종·무등록 투자일임업 영위), 범죄수익은닉법 위반, 특정범죄가중법 위반(조세포탈) 등이다. 이 중 무등록 투자일임업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부인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시세조종 여부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를 놓고 마지막까지 한 치의 물러섬 없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지난 1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정도성) 심리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라씨에 대한 시세조종 혐의를 설명하는 데에만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검찰은 "라덕연 조직은 거액 투자를 받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고가매수, 물량소진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제출했다"며 "투자자들이 정산을 요청하면 주가하락 방지를 위해 '하나, 둘, 셋'을 외치며 통정매매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8개 종목 모두 라덕연 조직이 (매수에) 들어가면서 주가가 우상향하고, 폭락 사태로 동시 하락했다"며 "피고인들에 의해 왜곡된 시세가 형성됐다는 것이 차트로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도 공범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 사건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라덕연"이라고 지목했다.
반면 라씨 측은 재판 내내 주가조작 의도가 없었으며, 무등록 투자일임업이라는 잘못된 방식을 택했지만 그 목적은 '가치투자'였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라씨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기존에 다뤄진 주가조작 사건들과는 전혀 다르다"며 "피고인들은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유동주식 비율이 낮고, 대주주 측에서 주가 상승을 의도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저평가 가치주에 투자했을 뿐인데 이를 과연 주가조작이라 볼 수 있나"라고 반박했다.
실제 라씨 조직이 매매한 8개 종목은 대주주 지분이 높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현저히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PBR은 시가총액을 기업의 순자산으로 나눈 지표다. 통상 1 미만인 경우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보는데, 해당 8개 종목은 라씨 조직이 사들이기 시작했을 당시 PBR이 0.27~0.71(2019년 12월13일 종가 기준)에 그쳤다. 현재는 0.19~0.35(2024년 11월21일 종가 기준)로 더 떨어졌다. 상장사 전체 PBR 평균은 1.91이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라씨는 최후진술에서 "기업의 주가는 적어도 해당 기업의 청산가치보다는 높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한국 주식시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수많은 투자자가 손해를 보고 있고, 저는 이 부당함에 맞서 정당한 주가가 반영되길 바랐다"고 호소했다.
검찰은 라씨 조직이 주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통해 주가조작을 시도했다고 공소사실에 적시했다. 그런데 1심 재판 막바지에 이 대목 역시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현행 자본시장법 176조는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에 대해 시세조종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CFD는 '장외' 파생상품이다. 변호인들은 CFD는 해당 법 조항의 적용 범위에서 벗어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CFD는 거래 특성상 실물증권과 달리 매매 주문이 곧바로 주식시장에 전달되지 않는다. 증권사는 CFD를 통한 매수·매도 주문이 들어올 경우 각 주문 수량을 상쇄하고 남은 수량에 해당하는 주문만 거래소에 제출할 수 있다. 흔히 위험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헤지(hedge)와 동일한 원리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라씨 조직에서 CFD 계좌를 통해 증권사에 낸 매매주문 수량과, 증권사를 거쳐 실제 거래소에 제출된 실물증권 매매수량은 매우 큰 차이가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라씨 측은 CFD 거래는 그대로 시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CFD를 통한 시세조종은 성립할 수 없다는 변론을 펼쳤다.
검찰 측은 "CFD는 장외 파생상품이지만 결국 장내 상장증권 시세와 연결된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 대목에 공방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라씨를 비롯한 핵심 피고인 3명에 대해서는 내달 중 1심 변론을 재개해 추가 심리를 진행할 방침이다.
라씨에 대한 검찰의 구형량(징역 40년)은 역대 경제사범에 내려진 최대 형량에 준하는 수준이다. 특히 2조359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도 함께 구형했다. 관련법에 따라 시세조종에 따른 부당이득(7377억원)의 3배 및 조세포탈액 2배 등을 합친 것이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SG 사태의 부당이득 규모를 놓고서도 여전히 다투고 있다. 라씨 측은 외부요인에 따른 주가 상승분 및 피고인을 제외한 투자자들에게 귀속된 수익 등은 모두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검찰 측은 이 같은 주장을 일부 반영하더라도 피고인들의 부당이득은 최소 4900억원가량이라고 반박했다. 자본시장법상 가중처벌 기준은 '50억원'이다.
SG 사태는 범행 규모나 기간, 기소된 피고인 수 등 모든 면에서 국내 자본시장에 큰 충격을 안긴 기록적 사건이다. 변호인단도 화려하다. 라씨 측에만 5개 로펌에서 30명에 가까운 변호인이 이름을 올렸다. 금융분야 '특수통' 검사 출신인 이원곤 변호사(사법연수원 24기·법무법인 평산)는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사건 특별수사팀장, 삼성 비자금 사건 특검 파견 등 이력이 있다. 외에도 서울고법 판사 및 대법원 재판연구관(조세) 등을 역임한 이규철 변호사(22기·법무법인 대륙아주),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 부장검사 출신의 권기대 변호사(30기·법무법인 가온),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부 부장검사 출신의 고진원 변호사(33기·법무법인 바른), 서울행정법원 조세전담부 판사 출신의 김태희 변호사(39기·법무법인 평산) 등 금융·조세 분야에 정통한 전관 출신이 포진했다. 금융범죄 중점청으로서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와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대결인 셈이다. 법원의 1심 선고는 내년 1월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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