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손실에 합병·상폐·매각' 10대그룹 '아픈손가락' 적자 계열사 긴급점검

적자 지속 유동성 위기설에 지주사가 나서서 진화
우량계열사와 합병하거나 공개매수로 상장폐지까지
그룹 재무통 CEO로 보내는 등 리스크 관리에 총력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이슈로 촉발된 유동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재계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롯데지주가 직접 나서 재무 위기설을 잠재웠지만, 장기 침체로 한국 재계 10대 그룹 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적자 계열사가 산적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2022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누적 1조77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올 3분기에는 적자 폭이 확대되면서 분기 영업적자 4136억원, 당기순손실 5138억원을 기록했다.

롯데그룹은 "2018년 이후 화학산업은 신규 증설 누적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수급이 악화하고 중국의 자급률 향상에 따라 손익이 저하됐다"며 "롯데케미칼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일부 공모 회사채의 사채관리계약 조항 내 실적 관련 재무 특약을 못 지키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회사는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 회사채 원리금 상환에는 문제가 없다"고 언급했지만, 시장의 불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지금 기업들이 아주 어렵고, 금융 시장도 아주 긴장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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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환율 불안이 지속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책변화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 금융 및 산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금리 인상과 자본시장 침체, 업황 악화로 적자가 누적된 기업들이 10대 그룹 내 곳곳에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주력 사업이 튼튼하다고 해도 대부분의 그룹이 적자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계열사 자금 지원 이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투자 또 투자‥미래성장성에 포기할 수 없는 적자 사업

삼성과 SK그룹은 '돈먹는 하마' 수준의 사업분야지만 미래성장성에 대한 기대와 사업 편중을 탈피하기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적자 사업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올 3분기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에서 1조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특정 사업부문에서 지속되는 적자가 전체 실적을 갉아먹고 있다. 반도체 사업에서 4조원에 못 미치는 분기 영업이익을 냈는데, 일회성 비용을 제외하면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는 7조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분석된다. 즉 메모리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파운드리 사업에서의 손실을 메운 셈이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엔비디아와 AMD,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대량 양산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반도체 매출 비중의 70%가 넘는 메모리 편중을 낮추기 위해 파운드리 등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SK그룹에서는 이차전지 사업을 진행하는 계열사인 SK온이 그룹 내에서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졌다. SK온은 2021년 4분기 창립 당시 3102억원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11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왔다. 특히 올해 2분기에는 4601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 3분기에는 240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적자의 늪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SK온은 지난 7월 일부 C레벨직 폐지 등의 비상경영체제 선포, 9월 희망퇴직 실시 등 긴축 경영을 이어왔다. SK온을 정상궤도에 올리기 위한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 작업까지 진행됐다.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SK E&S와의 합병을 마무리했다. SK온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과 합병했고, 내년 2월에는 SK엔텀과의 합병도 예정돼 있다. 이들 3개 피합병 회사는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을 보유한 SK그룹의 '캐시카우'로 손꼽힌다. 적자회사지만 미래사업으로 촉망받는 SK온에 그룹 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피할 수 없는 경기침체‥그룹 재무리스크 차단 위해 '전문가' 배치

경기 악화로 인한 적자 계열사에는 재무전문가를 보내 그룹 차원의 리스크로 확대되지 않도록 조기 관리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건설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경기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비상장회사지만 현대건설이 지분 38.62%, 정의선 회장 11.72%, 현대글로비스 11.67%, 기아 9.35%, 현대모비스 9.35%, 정몽구 명예회장이 4.68%의 지분을 보유한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다. 올 3분기 분기순손실 185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동기 353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과 비교해 적자전환했다. 자회사 실적을 포함하지 않은 별도 기준으로는 139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별도 기준 분기순손실도 527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3분기 170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그룹 내 '재무통'으로 꼽히는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을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현대엔지니어링 실적 부진 타개와 함께 조직 전반의 체질 개선을 가속할 계획이다.

과감한 매각이나 흡수합병, 상장폐지 등으로 리스크 전이 막아

포스코그룹은 지난해 1800억원가량의 적자를 낸 중국 장쑤성의 장가항포항불수강 제철소 매각을 준비 중이다. 장가항포항불수강은 1997년 설립한 생산법인으로, 조강 능력은 연간 110만t 규모다. 포스코홀딩스(58.6%)와 포스코차이나(23.9%)가 전체 지분의 82.5%, 중국 2위 철강사 사강집단이 17.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장가항 스테인리스 사업은 중국 경기 회복 지연과 공급 과잉 등 여파로 1억3000만달러(약 1812억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이는 전년 5900만달러(약 822억원) 적자에서 적자 폭을 2배 이상 키운 것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올해 3월 장인화 회장 취임 이후 그룹 차원에서 저수익 사업 및 비핵심 자산 125개에 대한 구조개편 작업을 진행 중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일본 정유업체 코스모오일과 합작해 세운 HD현대코스모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HD현대코스모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강도 높은 효율화 작업에 나선 것이다. 현대코스모는 화학사업을 바탕으로 2018년 매출 2조9893억원, 영업이익 1681억원을 기록하는 등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2020년 833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이 기간 누적 영업손실은 3183억원에 달한다. 중국 화학업체들이 BTX 생산을 늘리면서 제품 가격이 급격히 내려간 영향이다. BTX는 플라스틱 용기, 합성수지, 폴리에스터 섬유의 원료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말 결손금은 2685억원에 달하는 등 적자폭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모회사와 합병해 생산제품의 리밸런싱에 나섰다.

이마트가 최대주주인 신세계건설은 내년 1분기 상장 폐지될 전망이다. 이 회사는 지난 2년간 누적 2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냈다. 올들어서도 3분기까지 누적 109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 따른 분양 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적자가 누적되고, 이자율 상승에 기인한 재무부담이 커지고 있다. 앞서 이마트는 신세계건설의 자발적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올 하반기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기존 보유분과 함께 신세계건설 자사주를 제외한 의결권 지분 90%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도 피할 수 없는 경기침체 '적자의 늪'

LG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 역시 재작년 2조850억원, 작년 2조51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대규모 적자를 쌓고 있다. 올들어서도 3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 누적 적자만 6437억원이다. LG디스플레이는 애플 아이패드 등 태블릿과 노트북의 OLED 패널을 생산한다. 소비자용 IT 기기 수요가 충분히 되살아나지 않은데다, 지난 6월 시행한 생산직 희망퇴직으로 인한 일회성 비용 등이 실적에 반영됐다. 누적된 적자로 LG디스플레이의 이자 발생 부채는 2021년 12조7400억원 규모에서 2023년 말 기준 16조6000억원 규모로 늘었다. 부채비율 역시 같은 기간 158.46%에서 307.72%로 두배 가량 늘었다.


한화그룹에서는 한화오션이 3년 누적 영업손실 3조380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를 쌓아왔다. 최근 조선업 호황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해양 시절 파업으로 발생한 생산 지연을 해결하기 위해 생산일정 조정비, 외주비 등 일회성 비용 등이 실적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올 3분기부터는 흑자전환에 성공해 체질개선을 본격화하고 있다. 실적 회복의 지연 원인이었던 저가 물량을 연내 해소하고, 고수익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으로 체질 개선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GS그룹은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손실과 정제마진 악화로 GS칼텍스 실적이 악화하면서 영업이익이 49% 감소한 것이다. GS칼텍스는 3분기 3529억원의 적자를 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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