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예약 후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 수법이 지능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특히 연말을 앞두고 대량 예약 후 노쇼가 급증하는 가운데, 공무원이나 군인을 사칭한 노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예약 부도'라는 용어로 불리던 노쇼는 이제 일상적인 단어가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 노쇼를 넘어 대량 주문과 신분 사칭 등 그 수법이 진화하면서 자영업자들의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최근 송파의 한 카페에서는 스콘 50개와 아메리카노 25잔, 딸기 라테 25잔 등 약 100개의 제품을 주문받았다가 노쇼 피해를 입었다. 업주가 의심스러워 선결제를 요청했으나 "찾으러 갈 때 결제하면 되지 않느냐"며 거절당했고, 결국 당일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더구나 연락을 시도했으나 전화번호가 차단된 상태였다.
정선군청 공무원들의 노쇼 사건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여의도의 한 고깃집에 40인분을 예약한 뒤 나타나지 않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논란이 됐다. 해당 사건이 알려지자 정선군청 게시판에는 항의 글이 쇄도했고, "군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지역 주민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결국 군청 측은 "최대한 보상하겠다"며 사과했다.
군부대를 사칭한 노쇼도 증가하고 있다. 영종도의 한 식당에서는 해병대를 사칭한 이가 100인분의 불고기를 주문했다가 노쇼한 사례가 있었다. 업주는 군인들을 위해 귤까지 준비했으나 결국 피해를 보았다. "이경호 상사입니다"라며 신분을 속이고 주문한 뒤 연락이 두절되는 수법이 반복되고 있지만, 개별 업소 차원에서 일일이 확인하고 대응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유명 셰프들도 노쇼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TV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최현석 셰프는 100인분 식사 예약 후 노쇼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한 건설사가 400명 예약 후 노쇼해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당시 건설사 측은 "300명이었고, 취소 가능성을 고지했으며 60만원의 보증금을 걸었다"고 해명했으나, 결국 추가로 40만원을 보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쇼는 음식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용실의 경우 네이버 예약 시스템 등을 통해 30분 단위로 예약을 받는데, 노쇼가 발생하면 그 시간대의 수입이 전혀 없게 된다. 한 미용실 원장은 "예약금 제도를 도입하고 싶지만 고객들의 반발이 우려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결혼식장에서도 노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객 수를 미리 예상해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실제 참석자가 예상보다 크게 적을 경우 예비 부부가 그 차액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장례식장에서조차 조문 약속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 사례가 있어 유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노쇼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예약금 선결제 제도를 도입하거나, 예약 시간이 다가오면 알림 메시지를 보내는 리마인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노쇼 고객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업계 간 공유하는 방안도 시행 중이다.
각 업종별로도 구체적인 페널티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택시의 경우 카카오T는 배차 완료 후 5분이 지난 시점에서 취소하면 5분간 추가 호출이 제한되며, 일주일 내 5회 이상 취소 시 24시간 동안 서비스 이용이 제한된다. 운행 시간이 됐는데 승객이 나타나지 않으면 운행 요금의 100%를 위약금으로 부과한다.
의료업계에서도 특히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중심으로 진료비 선결제를 요구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병원비 선납 관련 소비자 분쟁이 2년 전보다 5배가량 증가했으며, 피부과가 157건으로 가장 많았고 성형외과가 131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호텔업계의 경우 취소 시 환불 불가 정책을 적용하는 곳이 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호텔 마일리지 획득을 위해 의도적으로 저가 호텔을 예약한 뒤 노쇼하는 행태도 발생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항공사들도 노쇼 승객들의 탑승 실적이나 마일리지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철도의 경우 출발 시간에 따라 차등적인 위약금을 부과한다. 출발 20분 전까지는 운임의 20%, 60분 전까지는 40%의 반환 수수료를 적용한다. 골프장은 더욱 엄격해서 노쇼 시 위약금을 부과할 뿐 아니라, 일정 기간 예약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예약금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여의도의 한 오마카세 식당은 1인당 음식값 전체를 예약금으로 받고 있으며, 한남동의 한 지중해 식당은 3인 기준 10만5000원의 예약금을 요구한다. 이처럼 예약금이 비싸지면서 소비자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법적으로 노쇼는 계약 파기에 해당돼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다만 실제 손해액 산정이 어려워 분쟁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준비한 음식 재료값뿐만 아니라 노쇼로 인한 기회비용 등도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업무방해죄 적용 등 형사처벌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노쇼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표준계약서를 도입해 1인당 평균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분쟁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약은 곧 계약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영업자들은 "노쇼 방지를 위해 '5계명'이나 '10계명' 같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계약금 선입금, 주문 내용과 취소 가능 시각의 문자 기록, 피해 사실 증명을 위한 주문서 보관, 블랙리스트 공유, CCTV 설치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노쇼는 단순한 약속 파기를 넘어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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