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아닌 문제이기 때문에 건건이 설명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 위법이 있다면, 당연히 철저하게 수사되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
사안을 '위법이냐, 아니냐'로 보는 시각은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법의 영역이다. 오로지 법의 잣대로만 보면 아무리 의도가 선하더라도 위법이 될 수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 법 아니던가. 정치는 사법이 아니다. 위법이 아니어도 문제 될 수 있다. 인식 자체가 힘을 갖는 게 정치다. 그래서 정치는 법보다 무섭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기자들과 질의응답 하며 내놓은 설명은 정치인답지 않았다. 그가 인생 대부분을 검사로 지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줬다. 한 대표와 가족, 인척의 이름으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 5일이다. 보름이 넘었지만, 한 대표는 "나는 안 썼다"라고 했을 뿐,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는 이슈 거리가 될만한 사안이 아니다. 한 대표 가족, 인척들이 실제로 당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나머지는 그에 따른 후속 조치다. 한 대표가 가족, 인척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끝난다. 맞다면 경위를 밝히고 사과하면 된다. 둘 다 안 하면서 시간만 흐르니 이슈가 커졌다.
우리 정치는 무슨 일이 터지면 반성하지는 않고 "너는 깨끗하냐" "너는 누구 편이냐"고 따진다. 그렇다 보니 갈등만 커진다.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다. 친한(친 한동훈)계는 친윤(친 윤석열)계의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설혹 가족, 인척이 썼더라도 무슨 문제냐. 혁신해야 하는데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식이다. 친윤계는 "한 대표가 드루킹과 뭐가 다르냐"며 친한계를 맹공한다.
사안이 불거진 막후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보수 성향 시사 유튜버가 의혹을 제기한 이후 권성동 장예찬 등 친윤계 인사들이 잇따라 의혹을 키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 대표 측에서 빌미를 줬다. 가족, 인척 명의의 글들이 수백 개 올라온 것이 증거다. 인위적으로 여론 조작을 시도한 흔적이다. 한 대표 측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 진작에 끝났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무언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이다.
이해 안 가는 것은 이슈가 불거진 이후 한 대표의 대응이다. 이미 여러 언론에는 한 대표의 배우자인 진은정 변호사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장 전 최고위원은 "진 변호사가 몸통"이라고까지 했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때문에 국민이 지쳤는데, 이번 사안에도 배우자가 등장한다. 국민이 어떻게 보겠나. 그런데도 한 대표는 그동안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재명 대표 선고나 민생 사안 등이 중요한 시기에 (이 문제가) 다른 이슈를 덮거나 그런 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신뢰 없이 어떻게 개혁과 혁신을 할 수 있나. 한 대표는 "수사 결과를 보자"며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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