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K-콘텐츠 투자를 위해 2028년까지 1조원대 규모의 전략펀드를 조성하겠다는 정부 계획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민간 투자금을 끌어오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올해 목표했던 6000억원의 규모 펀드 조성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다. 펀드 조성계획을 발표한 게 올 3월이었는데, 업계 현실을 파악도 못하고 장밋빛 전망만 제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펀딩을 통해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기대했던 방송·영화 제작 업계의 실망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일 'K-콘텐츠 미디어 전략펀드 조성 및 협력사업 협약식'에서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제공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22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IPTV·콘텐츠 전문기업 등 8개 기관은 최근 전략펀드의 모펀드로 약 2000억원을 출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해 안에 자펀드 4000억원을 포함해 6000억원대의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었지만 가까스로 모펀드만 해를 넘기기 전에 합의를 본 것이다. 이마저도 각 사별로 이사회 통과 절차를 남겨두고 있어 최종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민간에서 끌어들이겠다는 자펀드 4000억원 조성은 아직 착수도 못 했다.
1조원 규모의 전략펀드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올해 3월에 나왔다.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위원장 한덕수 국무총리)는 당시 민관 합동으로 2028년까지 1조200억원 규모의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를 신규 조성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마중물이 될 투자금을 내놓으면 민간 자금을 동원해 연내 총 6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는 중소·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모태펀드와 달리 대형 제작사에도 투자가 가능한 민간 중심의 펀드다. 치솟는 제작비를 충당하고 콘텐츠 지식재산권(IP) 확보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신설됐다. 이를 위해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50억원, 문화체육관광부가 45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정부 출자금 총 800억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방송·영화 등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민간 투자사를 찾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경기 불확실성으로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이 컸다. 지난달에서야 KT ,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IPTV 운영 3사와 CJ ENM , 한국방송공사, 중앙그룹 컨소시엄,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8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들 8개 기관의 대표는 각각 100억원 안팎의 자금을 출자하기로 약속했지만, 펀드 운용에 관한 세부사항을 놓고 이사회의 최종 결정이 남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민간 중심의 전용 펀드를 조성해 펀드 규모를 늘리고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이번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간에서 4000억원을 충당한다는 계획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과기정통부는 연내 자펀드 운용사 선정 절차에 돌입해 내년 3분기께 자펀드 결성을 완료할 방침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해외 자본이 아닌 국내 자본으로 제작해 IP까지 보유한 K-콘텐츠를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펀드의 운용 목적과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지난한 과정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콘텐츠 분야 투자는 불확실성이 큰 데다 고금리의 경기 불안까지 더해지면서 투자사를 모집하기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콘텐츠 제작업계 관계자는 "올해 미디어·콘텐츠 시장이 위축되고 제작 환경이 어려워졌다"며 "전략펀드가 제때 시장에 공급돼야 마중물이 돼 미디어·콘텐츠 업계에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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