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표류한 북한인권재단, 이번에는 '여사 문제' 발목

북한 문제 당사자인데 미국·일본보다 늦어
북한인권법 제정 이래 8년간 정쟁으로 소모
與, 법 개정안 냈지만…민주당 호응 미지수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정쟁으로 8년째 지연되고 있다. 이번에는 김건희 여사 문제에 엮인 특별감찰관 도입-특별검사법 추진에 막혀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여당이 법 개정안까지 발의하고 나섰지만, 여소야대 정국이 이어지는 22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출범은 불투명해 보인다.


20일 통일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6년 시행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관련 연구와 정책개발 등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러나 재단 출범은 8년째 지연되고 있다. 재단 구성 시 이사장 포함 12명 이내의 이사를 두게 돼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몫의 이사 후보를 단 한 차례도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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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인권의 정치화'가 이뤄진 한국의 상황과 국제사회의 관점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당장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근거가 되는 북한인권법의 경우에도 미국은 2004년, 일본은 2006년 제정·시행했다. 북한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이 10년 이상 뒤처진 것이다.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조사·연구도 그렇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출범하고 공식 보고서를 낸 건 2014년이지만,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보고서를 처음으로 공개 발간한 건 윤석열 정부 들어서다. 여전히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연구는 민간의 역량이 막강하다.


지난 정부 당시 미래통합당은 특별감찰관 도입과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연계하려 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민주당과 지난한 공방을 벌인 끝에 실패했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수석비서관 이상 대통령실 공무원을 감찰하는 기구다.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됐지만, 탄핵 국면에서 초대 감찰관이 사퇴한 뒤 여태 공석이다. 민주당이 8년째 법을 이행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보수 진영에서도 인권 문제와 무관한 정무적 사안을 연계하려 했다는 점에서 '인권의 정치화'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현 정부 들어서도 국민의힘은 특별감찰관 도입과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연계해서 추진했다. 정치적 맥락상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대안 격으로 야당에 내민 카드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두 가지를 모두 사실상 거부했다. 이미 거대 의석 수를 쥐고 있는 데다, 특별감찰관 카드에 호응할 경우 특검법의 당위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결국 두 사안을 분리시켜 대응하기로 했고, 전날 북한인권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국회가 정부 요청 30일 안에 이사를 추천하도록 시한을 정했고, 추천이 이뤄지지 않으면 통일부 장관의 재요청을 거쳐 직권으로 이사를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이 호응하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킬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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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선 법 개정도 쉽지 않다. 결국 북한인권 문제를 대북정책의 축으로 잡고 힘을 실어 온 윤석열 정부에서도 북한인권재단 출범은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북한인권법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 초당적 협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우선 사법부의 판단을 근거로 재차 민주당을 움직이려 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달 17일 나온 이사 추천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에 대한 서울고법 판결을 제시하며, 이사 추천을 촉구하는 공문을 국회에 발송했다. 22대 국회 들어 두 번째, 총 열네 번째 공문이다.


서울고법은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측이 국회와 민주당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재단 이사를 추천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인권법의 정상적 이행을 위해 북한인권재단과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가 하루빨리 출범할 수 있도록 향후 국회와 더욱 긴밀히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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