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으로 미 대선 결과의 윤곽이 나왔던 지난 6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화두는 비트코인이었다. 트럼프 당시 후보의 당선은 곧 비트코인의 승리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강하게 형성돼 있었던 터라 비트코인을 미리 구매한 후 대선 결과를 기다렸던 직장인에서부터 지금이라도 한 번 사 볼까를 고민 중인 사람들까지 모두가 그의 당선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식당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리고 식사 후 근무지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에서까지 사람들은 대화의 시작에 미 대선을 꺼내 들었다. 마무리는 비트코인으로 맺었다.
미 대선이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대선 때보다는 줄었다. 비트코인은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뜨겁다. 대선 전 7만달러를 밑돌던 가격은 트럼프 당선인 확정 후 연일 급등하며 지금은 10만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월가에서는 내년 20만달러 돌파도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말이 나온다.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데 여기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심리를 경험한 한국인들이 코인 급등장에 '묻지 마 투자'를 안 하고 배기기는 힘든 환경이 됐다.
블록체인이나 암호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에 내재가치가 있냐 없냐, 달러·금 등 다른 안전자산처럼 신뢰성과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느냐 여부를 따지기에는 비트코인이 갖는 재산적, 투자 가치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투자와 투기 사이 모호한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비트코인이 중요한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불변의 사실이다. 가상자산의 '형님'격인 비트코인이 세력을 확고히 다져놨으니 이제는 수많은 검증 받지 못한 '아우들'이 활개를 칠 게 불 보듯 뻔하다. 아니, 이미 활개를 치고 있다.
현상은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가상자산을 둘러싼 법적 장치, 제도적 규제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유로·엔 등 외국 통화와 금,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등으로 구성된 전략준비자산에 비트코인을 포함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미국과 차이가 크다. 우리 정부는 이제 막 금융위원회 산하 가상자산위원회를 출범해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논의하고 있다.
미국은 뉴욕증시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거래되고 있는 단계를 넘어 이를 기반으로 하는 옵션 상품에까지 투자의 길을 열어놨다. 한국은 비트코인 ETF 거래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투자의 길은 닫아놓고 투자 소득에 대한 세금은 또 걷는다고 한다. 올해 7월에서야 겨우 시세조종 등 불공정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시행했다.
가상자산에 대한 우리 금융당국의 느린 대응은 투자자들에게 "투자 경고"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정부가 인정하는 적합한 투자처가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 순간 비트코인은 투자가 아닌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다.
글로벌 가상자산 인식 변화 속도에 맞추지 못한 대응의 실기는 언젠가 정부를 향한 화살이 돼 돌아올 것이다. "부자 될 기회, 정부 때문에 잃었다"는 원망이 될 수도, "규제 장치가 없어 난 손실, 보상해달라"는 책임회피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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