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국내 증시와는 반대로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한국 진입이 가속화하고 있다. 은행 대출 규제 강화와 증시 침체 등으로 돈 구할 곳 없는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사모대출을 늘리며 몸집을 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미국계 PEF 아폴로가 서울 지점을 개설한 데 이어 영국계 PEF ICG(Intermediate Capital Group)도 연내 사무소 설립을 앞두고 있다.
최근 아폴로는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센터(IFC)에 지점을 개설하고 이재현 전 삼성증권 부사장을 한국 총괄 대표로 선임했다. 아폴로는 2006년부터 아시아 지역 저변을 확장하면서 도쿄, 시드니, 홍콩, 뭄바이, 싱가포르 등에 진출했다.
ICG 역시 홍콩 사무소 내 한국팀을 따로 떼어 연내 서울 사무소를 열 계획이다. ICG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글로벌 자산운용사로 전체 운용자산(AUM) 규모가 685억달러(약 95조원)에 이른다. 글로벌 시장에서 대체투자 및 사모대출 분야에서 명망 있는 운용사로 꼽힌다.
국내 A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기존에도 한국에서 출자를 많이 받아온 PEF들인데 최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투자가 막히면서 그나마 여러 가지 환경이 갖춰진 한국에서 기회를 보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에 이어 3대 시장으로 커지면서 글로벌 PEF들이 한국 자본시장에 직접 사무소를 설립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자본투자와 회수가 힘들어진 중국 대신 한국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미국 최대 PEF 운용사인 블랙스톤을 시작으로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PEF인 EQT파트너스도 한국 사무소를 열었다. 미국계인 프리티움파트너스·누버거버먼자산운용·오차드와 영국계 금융사인 맨그룹·콜러캐피털 등도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이미 진출해 있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칼라일, TPG, 베인캐피탈, CVC,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등은 국내 사무소 및 법인의 투자 인력을 늘렸다.
이는 금융·자본시장에서 원활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한국 기업들이 사모대출 시장으로 대출 수요의 방향성을 이전하면서 글로벌 PEF들의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반영한다.
국내 B 공제회 CIO는 "프라이빗 자산시장이 계속 커지는 것은 은행들의 규제에 따른 신용 위험축소 추세와도 관련이 깊다"며 "그만큼 은행들이 해오던 대출이 사모 운용사들로 이전되면서 이들의 규모와 시장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PEF 들이 잇따라 한국 조직을 강화·확대하는 것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처 발굴과 동시에 자금 확보를 위한 출자 마케팅 측면도 있다.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 교직원공제회, 새마을금고 등이 글로벌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B 공제회 CIO는 "한국 주식시장은 왕따 분위기가 확연하지만 반대로 사모자산, 대체투자의 투자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외국 운용사(GP)들 입장에서 한국을 큰 수요처로 보고 있다"며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사모자산, 즉 대체투자를 지속해서 늘려나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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