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병사들이 사망하면 오히려 경제는 성장한다는 현지 학자의 분석이 나와 파문이 예상된다. 러시아의 전시 경제가 민간 경제를 압도한 탓이다.
러시아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모스크바 소재 정책 싱크탱크 소장인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는 최근 전쟁이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특정 연령대 이하 남성이 전쟁에서 사망하면, 오히려 러시아 경제는 이득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 경제금융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전했다.
국가총생산(GDP) 창출의 핵심인 인구가 소모되는데 어째서 경제에는 이득일까. 이노젬체프는 현재 러시아군에 모병된 젊은이들이 일반적인 러시아 청년보다 훨씬 높은 연봉과 생명 수당을 받는다는데 주목했다.
전장에서 사망한 러시아 병사는 1450만루블, 미화로는 15만달러(약 2억900만원)를 보상금으로 받는다. 물론 이 돈은 죽은 병사 몫이 아니다. 고향에서 남편, 혹은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유족에 돌아가는 위로금이다. 더불어 유족은 러시아 병사에게 의무적으로 지급되는 군 보너스와 군인 보험도 돌려받게 된다.
해당 금액은 평범한 러시아 시민의 평균 소득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성인 남성이 60세까지 쉬지 않고 일했을 때 벌 수 있는 누적 기대 소득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이노젬체프는 "최전선에서 사망한 청년 병사가 평생 일한 중년보다 국가 경제에 훨씬 높은 이익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WSJ에 전했다.
이노젬체프는 이런 현상을 "죽음의 경제학(Deathnomics·데스노믹스)"이라고 칭했다. 전쟁 돌입 이후 러시아 경제가 군수 산업과 국방부 예산에 의존하는 기형적 형태로 변질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러시아 국방부가 유족과 군인 집안에 지불하는 금액 덕분에, 현재 러시아의 빈곤율은 1995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백수십만명에 이르는 군인 연봉이 사실상 빈곤층 구휼 정책을 대신하게 된 셈이다.
러시아 정부가 군인 수당으로 지급하는 액수는 어마어마하다. 지난 6월까지 사망 위로금은 300억달러(약 41조원)에 달했다. 해당 금액이 유족에 전송되면서, 일부 가난한 지역의 은행 예금은 81~151%가량 폭등하기도 했다.
서방 분석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최전선에서 사망한 러시아 병사의 수는 적어도 6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 정부는 매월 3만명의 새 병력을 자국에서 모집해 사망자를 대체하고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징발 병력 자원도 고갈돼 외국인 용병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러시아에 1만명 내외의 병력을 파병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데스노믹스는 장기적으로 러시아 경제를 망가뜨릴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 성장 없이 인위적으로 부풀어오른 소득은 러시아의 물가만 자극할 뿐이다. 러시아 통계청은 올해 9월 인플레이션이 10%에 근접했다고 추산한다. 특히 서민층에 가장 중요한 식량인 감자 물가는 73% 폭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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