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지도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복귀에 대비해 유럽의 안보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나 해리스가 아닌 우리 자녀들을 위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며 유럽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함을 역설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럼프는 미국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미국의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며 EU 또한 유럽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날 EU 정상들이 주목한 것은 유럽의 방위 역량 강화다. 트럼프 당선인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비롯한 동맹국들의 국방비 증액을 압박해오고, 취임 시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속히 종식하겠다 예고한 만큼 이제는 미군 없이도 유럽 안보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생긴 것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유럽이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는 데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며 "미국이 우리를 보호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도 "주된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라며 "이것은 경쟁력과 유럽의 방위력에 관한 것"이라고 공감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예고한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통상 정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는 "(미·유럽 무역분쟁은) 일어나선 안 될 일인 만큼 그 위험성에 대해 트럼프를 이해시키자"고 주장했다. EU는 과거 트럼프 1기 시절 철강 관세 등을 놓고 미국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트럼프 2기도 10~20%의 보편 관세 도입을 예고한 만큼 충돌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EU 정상들은 트럼프 당선인을 '사전 설득'하기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간 모습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오후 엑스(X·옛 트위터)에 "트럼프 당선인과 아주 좋은 전화 통화를 했다"면서 방위력, 우크라이나, 무역, 에너지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도 "트럼프의 놀랄 만한 선거 승리를 개인적으로 축하하기 위해 (그와) 통화했다"며 관계 밀착에 나섰다.
이른바 'EU+알파(α) 정상회의'로 불리는 EPC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인 2022년 10월 범유럽 차원의 소통 및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출범했다. 5차 회의인 이날은 EU 27개국을 포함해 47개국 정상이 초청됐으며, 친러시아 성향이자 트럼프 당선인을 공개 지지해온 빅토르 총리가 주재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그 어떤 회원국도 다가올 도전을 홀로 관리할 수는 없다"며 빅토르 총리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헝가리가 EU와 나토 회원국임에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줄곧 반대하고 EU가 추진한 대(對)러시아 제재 강화에 번번이 제동을 건 점을 저격한 셈이다.
EU 정상들은 이날 오후 만찬 회동을 하고 8일에는 비공식 정상회의를 열어 EU-미국 관계, 유럽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추가로 논의할 계획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