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로펌 압수수색은 ‘반칙’이자 ‘변론권 침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불가피한 수사의 방식이란 반론이 존재한다. 압수수색 집행은 법원 영장 발부가 전제여서 절차적 정의도 충족한다. 이 때문에 법무부에서는 2013년 ACP 도입 법안이 국회에 처음 발의했을 때부터 ‘신중 검토’ 의견을 견지해왔다. 법무부 관계자는 1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존 입장에서 큰 변화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신설함에 있어서 증거은닉 창고로 활용될 여지가 있어서 보완책 마련도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호사들이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ACP 도입 신중론’에 힘을 싣는다. 지난 6일에는 1조원대 다단계 금융사기를 저지른 김성훈 전 IDS홀딩스 대표의 범행을 도운 사기 방조 혐의로 기소된 현직 변호사에게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지난달에는 의뢰인을 협박해 미수에 그친 혐의로 1심에서 현직 변호사가 징역 7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같은 사건들은 변호인이 수임료를 대가로 의뢰인의 위법행위를 숨기고 도울 수 있어 수사의 성역으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검찰 측 논리에 힘을 보탠다.
수사당국 안팎에선 변호사 비밀유지권이 폭넓게 인정되면, 로펌이나 변호사 사무실이 사실상 범죄 은닉의 ‘비밀 금고’이자 ‘은신처’, ‘자료 도피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차장검사는 “로펌 압수수색은 법원의 영장 발부가 돼야 하고, 공판에서도 법률의견서가 유죄 증거로 채택되려면 변호사가 진정성을 증명해야 가능하다”면서 “이미 여러 단계의 제동 장치가 있다”고 했다. 현행법 하에서도 변호사는 참여권을 주장해 압수거부를 주장할 수 있고, 재판 단계에선 위법수집증거 배제를 주장하거나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세조종, 회계 부정, 불공정 거래 등 기업 범죄유형이 세분되고 고도화돼 수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로펌 압수수색의 현실적 이유 중 하나로 제기된다. 검찰이 피고인과 변호인 간의 법률 자문 내용을, 수사의 단초를 여는 ‘블랙박스’로 여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수사 현실이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판례나 학계에서는 ACP 도입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로펌이 범죄자료 은닉처가 되는 부작용은 비밀유지권의 예외 조항으로 방지하면 된다는 이유다. 변협 관계자는 “변호사가 범죄에 가담했거나, 공범 또는 방조한 경우, 중대한 공익상 이유가 있는 경우 압수수색을 허용토록 하는 방식이 이미 ACP 제도 안에 있다”면서 “예외적 불허의 규정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하면 도입에 따른 악영향은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월에는 서울남부지법에서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도입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남부지법 형사11단독 사건을 맡은 정성화 판사는 장하원 디스커버리 자산운용 전 대표가 압수수색 처분에 불복해 낸 준항고를 일부 인용했다. 준항고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등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제도다. 법원이 준항고를 인용할 경우 해당 압수물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남부지법은 “헌법 제12조 4항에 의해 인정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중 하나로서,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서 의뢰인이 법률 자문을 받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이뤄진 의사 교환에 대해서는 변호인이나 의뢰인이 그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상고해 현재 대법원이 심리 중에 있지만,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을 인정한 고무적 판결로 거론된다.
하종민 광주지방법원 판사는 지난달 30일 ‘제14회 한국 법률가대회’ 지정토론문에서 “(남부지법의 해당 판결은) 해석을 통해 의뢰인의 비밀유지권 도출을 시도한 것인데, 대법원이 기존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밀유지권에 관해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릴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예승연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교수도 “의뢰인의 비밀유지권은 명백히 헌법상 보호되는 기본권이기 때문에 의뢰인과 변호사의 비밀유지권 모두를 규정한 입법을 빠른 시일 내에 제정해 권리 침해의 부당한 상황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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