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건물, 자동차, 그리고 사람을 폭발이나 고속 충돌에서 발생하는 충격파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혁신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충돌·폭발이 일어나면 큰 응력파에너지가 빠르게 전달돼 사물이나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때 그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분산시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특수한 재료가 필요한데 지금까지 개발된 재료들은 반복·지속 사용에 한계가 있었다.
부산대학교(총장 최재원)는 부산대 고분자공학과 이재준 교수 연구팀과 KIST 김태안 박사 연구팀이 충돌·폭발 시 외부의 큰 에너지를 흡수하면서도 스스로 수리할 수 있고 재활용도 가능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고분자 개발에 성공했다고 7일 밝혔다.
흔히 ‘충격파’로 일컬어지는 ‘고변형률 속도 응력 파동(high-strain rate stress waves)’은 폭발 및 물체 간의 빠른 충돌 등에 의해 발생하며 이는 건물 및 차량 등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에도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다.
이러한 부가적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소재 측면에서 외부로부터 유입된 에너지를 물리적 결합의 해리를 유도하는 데 사용하거나 구조가 무너질 수 있는 첨가제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감쇠시키는 재료들이 보고돼 왔지만, 반복성과 수명 측면에서 활용이 제한적이었다.
이에 부산대·KIST 공동 연구진은 ‘촉매에 의해 동적 공유 결합 교환 반응의 활성도를 조절함으로써 효과적인 고에너지 소산(消散, 에너지를 흩어지거나 분산시킴) 능력을 보유한 동적 공유 결합 고분자 네트워크’를 합성했고 자가 치유 능력 및 화학적 재활용성까지 선보이며 고에너지 소산재로의 활용 가치를 평가·보고했다.
이번 연구는 고에너지 소산 능력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동적 고분자 네트워크의 필요조건들을 재료의 점탄성(粘彈性, 점성과 탄성을 동시에 갖는 성질) 거동과 연관 지어 상세히 기술한 첫 연구 성과로 의미가 크다.
특히 다른 동적 고분자 네트워크들과 달리 무수히 많은 동적 공유 결합을 내포한 상태에서 교환 반응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에너지 소산 능력이 달라진다는 점을 최초로 소개했다. 기존에 보고된 고에너지 소산 재료들의 제한되는 반복성을 자가 치유 성능으로 극복하고 화학적 재활용 방법을 통해 다시 단량체 및 가교제로 회수함으로써 재료의 지속가능성 또한 높였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이황화물 결합(disulfide group)을 포함하고 있는 자연 유래 물질인 알파-리포산(α-lipoic acid)을 기반으로 각기 다른 물성을 나타낼 수 있는 단량체 및 가교제들을 직접 합성했다.
여러 종류의 합성된 단량체들로 만들어진 단일중합체들을 비교해 측쇄(side chain, 고분자나 분자의 주사슬에서 갈라져 나오는 분자 그룹)의 길이 및 2차 결합의 존재 여부에 따라 재료의 점탄성 거동이 변화하며 달라지는 tan δ(탄젠트 델타) 값이 고에너지 응력 파동의 소산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tan δ는 손실탄성률(Loss modulus) 와 저장탄성률(Storage modulus)의 비율로 정의되며 에너지 저장 능력에 대한 에너지 소산 능력을 나타내어 재료의 감쇠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다.
연구팀은 해당 단량체들과 가교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동적 탄성체가 촉매의 함량에 따라 고에너지 소산 능력이 50%에서 70%까지 증가할 수 있음을 보였고 기존 우수한 소산재로 보고된 PDMS, 폴리우레아와 비견될 만한 성능을 확인했다.
고에너지 소산재로의 활용 특성상 불규칙적이고 강한 에너지에 노출됨으로 인한 재료의 손상은 불가피하지만, 해당 재료는 우수한 이황화물 그룹 교환 반응을 기반으로 자가 치유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염기성 조건 하에서 다시 단량체 및 가교제로 전환·재회수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지속 사용이 가능한 소재임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영국 왕립화학회(Royal Society of Chemistry, RSC)의 저명한 재료 학술지인 ‘머티리얼즈 호라이즌스(Materials Horizons)’ 11월 7일 자 표지 논문에 선정됐다.
연구 책임을 맡은 KIST 김태안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자칫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충격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흡수하면서도 폐기 시 원래의 단량체로 회수돼 지속 사용이 가능한 소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특히 “해당 재료는 동적 고분자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단순 필름 상태를 넘어서 발포재 및 코팅재 등 적용이 필요한 부분에 따라 가공적 측면에서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부산대 이재준 교수는 “빠른 충돌이 빈번한 우주 환경에서의 활동 증가와 각국 간 첨예한 대립으로 인한 고에너지 폭발이 잦아지는 전장 환경 등에서 장비와 구조물, 그리고 인체는 고변형률 속도 응력 파동에 더욱 자주 노출될 것이다. 이번 연구는 동적 공유 결합 화학을 활용해 이러한 응력 파동을 효과적으로 분산하고 파동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재료 설계 원칙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KIST 학생연구원이자 서울대 재료공학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이주호 대학원생, 부산대 고분자공학과 박경민 석사과정생, KIST 이동주 학생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 연구책임자인 KIST 김태안 박사, 부산대 고분자공학과 이재준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주도해 수행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안철희 교수와 KIST 신지윤 학생연구원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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