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과 생산자물가 등 실물경제에 장기간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2050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하는 등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관련 정책을 조기에 시행할수록 부정적 영향은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BOK 이슈노트, 기후변화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도록 온실가스를 적극적으로 감축할 경우 2050년경 우리나라의 GDP는 기준시나리오 대비 13.1%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리나라의 탄소가격을 2030년 t당 22만원에서 2050년 250만원으로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기술이 발전하고 기후피해를 완화할 경우 2100년경 GDP 감소폭은 10.2%로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에 활용된 기준시나리오는 중앙은행·감독기구 간 자발적 논의체인 NGFS(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가 국내 인구 성장 추세를 바탕으로 제시한 성장경로다. 기후 리스크로 인한 충격 없이 과거 추세를 반영해 경제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경우를 가정한다. 국내 활용 가능한 생산요소를 바탕으로 추정한 잠재 GDP와는 무관하다.
만약 기후변화에 무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GDP는 더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대응 시나리오에서는 탄소가격 상승이 전제되지 않아 2050년경 GDP는 기준시나리오 대비 1.8% 감소하는데 그쳤지만, 이후 기후 피해가 확대되면 2100년경엔 21%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정책 대응 시기에 따라서도 GDP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2도 이내로 억제하거나, 당초 계획보다 지연 대응하는 경우 2050년경 GDP는 기준시나리오 대비 각각 6.3%, 17.3% 감소했다. 2100년경에는 GDP가 15%, 19.3%까지 감소폭이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별로 보면 기후변화로 인한 전환 리스크에 정유·화학·시멘트·철강 등 고탄소산업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가격이 상승하는 2024년~2050년 중 이들 산업의 부가가치는 1.5도 목표로 대응 시 2050년경 기준시나리오 대비 62.9% 감소했다. 다만 이후 친환경 기술이 발전할 경우 2100년경 부가가치 감소폭은 32.4%로 둔화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만성 리스크에 취약한 농업·식료품·건설·부동산·음식점은 무대응 시나리오에서 부가가치가 2050년경 기준시나리오 대비 1.8% 감소하는 것에 그쳤지만, 온도상승과 강수 피해가 증가하는 2100년에 다다를수록 부가가치 감소폭이 33.4%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자물가 또한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상승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5도 대응 시나리오에서 생산자물가는 탄소가격 정책 도입으로 기업 생산비용이 증대되면서 2050년경 기준시나리오 대비 6.6%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친환경 기술 발전으로 생산비용이 절감되면 점차 완화돼 2100년경 1.9% 상승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100년에 다다를수록 글로벌 농산물 공급충격에 따라 수입물가가 상승하면서 생산자물가 상승압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에 무대응할 경우 그 피해 규모는 조단위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무대응 시나리오에서 태풍 피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확대돼 피해액이 9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1.5도 대응 시나리오에서의 피해액(7조원)보다 38% 큰 수준이다. 홍수에도 무대응할 시 2100년경 피해액이 3조2000억원에 달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1.5도 대응 시나리오에서의 피해액(2조1000억원)보다 52% 크다.
김재윤 한은 지속가능성장실 과장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 시행 초기에는 정책 비용을 수반하지만 이후 기술발전, 기후피해 축소 등을 유도해 우리 경제의 회복력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조기에 강화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장기적으로 유리한 전략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고서에서 제시된 네 가지 경로 중 1.5도 대응 목표가 가장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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