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밥을 잘 사주는 형이지만 이번 승부에선 뭉개버리겠다”고 동생은 매정스레 말했다. “참 좋은 동생”이라면서도 “그동안의 패배를 인정사정없이 응징해 설욕하겠다”고 형은 되받았다. 사이좋은 친형제처럼 소주잔도 나누며 서로 챙겨주는 두명의 족구인이 경기에서 만나면 사람이 바뀐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승부세계에선 사사로운 우정이나 남의 처지 따위는 어림없다. 그간의 땀을 저장해온 자존심이 있고 함께 에너지를 쏟아부은 팀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박정빈 씨(27·부경대 4년)는 중학생 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원생 친구들과 짬짬이 ‘족구놀이’하다 고3 수능 이후 본격적으로 동호인 클럽을 창단해 족구인이 됐다.
그는 ‘부산중앙’ 족구클럽에서 공격수인 이른바 ‘킬러’ 포지션을 현재 맡고 있고 체전부(옛 최강부) 선수를 빼면 일반부 생활체육 족구에서 부산 최고의 킬러로 인정받고 있다.
김민수 씨(31·직장인)는 ‘오륙’ 족구클럽의 공격 주포로 흔히 산성이나 동네에서 족구 놀이를 즐기는 ‘즐족’을 떨치고 본격적인 족구인이 된 지는 3~4년밖에 안된다.
현재 소속된 오륙 족구팀엔 29세 때 가입했으니 생활체육 일반부 족구 선수로 뛰는 것은 3년차다. 그가 작년에 상주곶감배 전국 족구대회에 공격수로 출전해 3위를 거머쥐었으니 족구 재능에선 타고난 ‘신동’으로 불릴 만하다.
오는 3일 부산 사상구 신라대학교에서 아시아경제 영남본부와 부산MBC가 공동주최하는 ‘부산MBC-사랑모아금융서비스배’ 제1회 우수팀초청 족구대회에 이 두 공격수가 출전해 J3~4통합부 타이틀을 놓고 자웅을 겨룬다.
김민수 선수는 “정빈이는 너무 유연하고 간결하게 공격해서 예측이 어렵고 전방 수비가 최고 수준”이라고 치켜세웠고, 박정빈 선수는 부산 족구의 최대 라이벌에 대해 “예상 못한 공격이 많고 민수 형의 발코로 찍어 차는 공격기술을 따를 일반부 선수는 없을 것”이라고 격찬했다.
그러나 부산 최고 공격수를 보유하고 수비의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오륙과 부산중앙 팀이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부산시족구협회 윤병규 경기이사는 “사천 ‘통’과 진해 ‘백구’ 등 막강한 타지역 족구팀도 초청 클럽으로 이번 사랑모아 컵을 잡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며, “부산 팀들이 울타리 너머 달아난 닭만 쳐다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회는 지자체나 족구협회가 예산을 지원해 주최 주관하는 생활체육대회가 아니다. 부산에선 스폰서십으로 진행되는 첫 전국대회여서 족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첫 ‘사랑모아배’ 족구대회의 관전 포인트는 다채롭다. 6개 부서 타이틀을 놓고 각 부서 출전 선수들이 기량을 겨룬다.
J6부서에 신라중학교 1학년생 윤주원 군(13세)이 최연소 출전자로 기록됐고 ‘한새’ 클럽의 1954년생 70세 황대선 씨는 최고령 선수로 60대부 경기에 출전한다.
50대부 경기에 사하구 ‘여울50’ 팀으로 출전하는 황의용 씨와 J5부서에 ‘부산중앙’ 팀 소속으로 나서는 황동욱 선수는 부자지간이다.
여성부는 연합팀 2개팀이 출전해 이벤트 매치를 벌인다. 여성 족구인으로선 보기 드문 30여년에 이르는 구력을 가진 50대 최영미 선수와 동갑내기 박남숙 선수가 각각 팀을 나눠 공격을 겨루는 승부도 눈여길 경기다.
부산시족구협회 손완욱 사무국장은 “총 55개팀 선수와 가족, 족구관계자 600여명이 모이는 이번 족구 축제를 마련해 준 사랑모아금융서비스에 감사를 전한다”며, “협회 차원에서 성공적인 대회로 기억되도록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박삼철 부산족구협회장은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국민스포츠이자 세계 속의 K-스포츠로 활성화되길 바라며 이번 대회를 기회 삼아 부산이 족구 메카로 떠오르도록 힘을 다해 뛰겠다”고 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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