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조 보험금청구권신탁 열린다…경쟁력 강화 나선 보험사

12일부터 보험금청구권신탁 시행
보험사, 전문가 채용하고 신탁조직 재정비
종신보험 연계한 신상품 출시 준비 중

앞으로 사망보험금을 신탁 자산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됐다. 보험사들은 2%라는 낮은 신탁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최근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며 신탁업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2일부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시행해 보험금청구권신탁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을 통해 3000만원 이상 일반사망 보장은 보험 수익자를 신탁업자로 변경하고 신탁 수익자를 배우자·직계존비속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청구권신탁의 문이 열리게 됐다. 다만 재해·질병사망 등 특약사항 보험금청구권은 신탁이 불가하다. 계약 특성상 보험계약대출도 신탁이 안된다.

국내 보험사 중 종합재산신탁업 자격을 취득한 곳은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흥국생명·미래에셋생명 등 생명보험사 5곳이다. 종합재산신탁은 하나의 계약으로 금전·부동산·유가증권·특수재산 등 여러 유형의 재산을 함께 수탁해 통합 관리·운영할 수 있는 서비스다. 유언대용신탁·증여신탁·장애인신탁·후견신탁 등을 할 수 있다. 삼성화재와 KB손해보험 등 손해보험사 2곳은 금전신탁만 하고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서 지난 8월 기준 이들 보험사 수탁고는 24조9900억원으로 전체(1361조원)의 1.8%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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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보험사들에 신탁시장은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었다. 보험과 비교해 수수료가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회사·상품별로 차이가 있지만 신탁 수수료는 보통 수탁고의 연 1% 내외다. 은행에 비해 영업망이 부족하고 신탁상품 하나 파는 시간에 보험 하나를 더 파는 게 이익이라 관심이 적었다. 대체로 일반신탁보다는 퇴직연금신탁에 크게 의존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험청구권신탁이 본격 허용되면서 앞으로는 이런 분위기가 바뀔 전망이다.


보험금청구권신탁은 고객이 받는 보험금을 신탁사가 관리·운용해 지정한 수익자에게 지급하는 서비스다. 현재 자본시장법이 허용하는 신탁자산은 7개뿐이지만 앞으로 보장대상·계약특성·수익자 등 특정요건을 충족하는 일반사망보험계약에 한해 보험금청구권신탁이 가능해졌다. 보험사들은 전에 확보한 보험계약과 연계하면 적은 비용으로 탄탄한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어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생보사 22곳의 사망 담보 계약 잔액은 약 883조원에 달한다. 신탁업에 약 900조원의 시장이 추가로 열리는 셈이다.

보험금청구권신탁을 이용하면 뜻밖의 상황에 대비해 내 의지대로 재산이 쓰이도록 설계하고 상속분쟁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예컨대 종신보험 가입자가 자신이 사망할 경우 지급되는 사망보험금을 양육의무를 저버린 배우자가 아닌 자녀에게 온전히 남길 수 있다. 경제관념이 없는 자녀에게 재산을 한번에 상속하지 않고 매년 기념일마다 나눠 지급하도록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상속재산은 지난해 39조원으로 2018년 20조6000억원과 비교해 89.3% 증가했다.


현재 보험사 중 신탁업 1위는 삼성생명으로 지난해 보험사 수탁고의 약 42%(9조7000억원)를 차지했다. 삼성생명은 2007년 종합신탁업 자격을 취득해 유언대용·장애인·증여·치매신탁 등에 진출했다. 삼성생명은 일찍이 WM사업부(종합자산관리센터) 내 신탁부에서 관련 역량을 키워오고 있다. 이날 보험금청구권신탁 출시 당일 1호 계약자도 나왔다. 미성년 자녀를 둔 50대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체결했다. 본인의 사망보험금 20억원에 대해 자녀가 35세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이자만 지급하다가 자녀가 35세, 40세가 되는 해에 보험금의 50%씩 지급하도록 설계됐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보험금청구권신탁은 사망보장이라는 보험 본업과 고객 맞춤형 보험금 지급설계라는 신탁업이 연계되면서 생명보험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전문가 그룹을 통해 최적의 해결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지난 6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재산신탁업을 인가받았다. 2007년 금전신탁에 뛰어든 데 이어 재산신탁 진출에도 성공하면서 종합재산신탁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신탁 전문인력과 변호사·세무사 등 약 14명으로 구성된 별도 조직도 꾸렸다. 교보생명도 보험금청구권신탁 시행 시기에 맞춰 상품 출시를 준비해 왔다. 김계완 교보생명 종합자산관리팀장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상속·증여·후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안정적인 재산 운용과 재산의 세대 간 이전 측면에서 생명보험과의 연관성을 고려해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금청구권신탁 운용 자격을 갖춘 한화·미래에셋·흥국생명도 관련 서비스 준비와 사업성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신탁업 관련 라이선스가 없는 일부 금융지주계열 보험사들은 은행·증권 등 다른 금융계열사와 협업하는 형태로 신탁업 진출 발판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사망보험뿐 아니라 상해·질병보험의 보험금청구권도 신탁재산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사망보험뿐 아니라 상해·질병보험까지 신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신탁업이 치매노인과 고령층에 대한 종합재산관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신탁제도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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