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우리의 말년이 건네는 위로

일흔 넘은 조용필 스무번째 앨범
타이틀 ‘그래도 돼’는 인생 3부작
가왕이 건네는 신곡에 가슴 뭉클

이재익 SBS 라디오 PD·소설가

이재익 SBS 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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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새 노래가 낙엽처럼 툭 찾아왔다. 무려 20번째 정규 앨범의 타이틀 ‘그래도 돼’.

이제는 믿어 믿어봐 / 자신을 믿어 믿어봐

지치고 힘이 들 때면 / 이쯤에서 쉬어가도 되잖아

그래도 돼 늦어도 돼


일흔이 넘은 가왕은 응원과 위로를 함께 담은 노래를 세련된 편곡에 얹어 불렀다. 지난번 19번째 앨범의 타이틀 ‘바운스’처럼 모던록 장르로 매끈하게 뽑아냈다는 점에서 연속성이 있는 것 같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1990년에 나온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와 1997년에 발표했던 ‘바람의 노래’ 후속곡처럼 들렸다. 두 곡에 걸쳐 인생에 대한 고민과 깨달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돼'까지 3부작으로 완성된 느낌이다. 노래를 듣고 눈물을 쏟았다는 고백이 유튜브 영상 아래에 달린 것도 공통점이다. 내 나름으로 조용필의 '인생' 3부작이라고 이름 붙여보았는데, 독자님들도 세 곡을 이어 들어보시라.

이 노래 외에도 인상적인 경험이 있었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은 2022년에 먼저 공개했는데 그때는 별 감흥이 없더니 이번에 앨범을 통째로 듣다 보니 벅찬 감정이 몰려왔다. 아니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어? 퍼즐 조각만 만지작거리며 이게 뭐지 하다가 맞춰진 그림을 보고 감탄한 것이다.


조용필은 누구보다 뛰어난 작곡가이자 작사가이기도 하다. 앞의 인생 3부작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직접 작곡했고 '바람의 노래'는 곡은 물론이고 노랫말까지 직접 붙였다. 히트곡 대부분을 직접 만들었던 그가 최근 들어 젊은 작곡가들(특히 외국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운스'가 대표적인 예. 이번 앨범은 아예 7곡 전부 남의 곡을 받았다. 이 또한 거장이 내릴 수 있는 유연하고 겸손한 결정일 테다.


뮤직비디오도 본인이 전혀 관여하지 않고 외부에 맡겼는데 결과는 대성공이다. 광고와 영화를 주로 만들다가 뉴진스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유명해진 콘텐츠 제작업체 '돌고래 유괴단'이 또 솜씨를 발휘했다. 치매 걸린 할머니(이솜)가 지난 삶을 돌아본다는 내용인데 그녀의 회상 속으로 '괴물' '부산행' '태극기 휘날리며' 등등 블록버스터 영화의 장면들이 교묘하게 섞여든다. 박근형, 변요한, 전미도 등등 배우들 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주인공이 달 표면에 서서 활짝 웃으며 지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이 압권. 먼 훗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손 흔들어주는 모습이 겹치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노래는 일흔이 훌쩍 넘은 가수가 팬들에게 선보이는 신곡인 동시에 말년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그냥 좋은 노래에는 칭찬이 달리지만, 명곡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달린다는 유튜브 댓글에 '좋아요'를 꾹 눌렀다.


마침 블랙핑크 '로제'의 신곡 '아파트'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K-팝도 좋고 아이돌 노래도 좋은데 우리 가요계에 걸그룹 보이그룹의 지분이 너무 커져 버린 건 아닌가 싶던 아쉬움이 싹 사라졌다. 어쩌면 지금이 올해 우리 가요계가 가장 풍성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맛보지 못한 분이 계신다면 얼른 드셔 보시길. 잘 익었다.

이재익 SBS 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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