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원화가 온다]④선진국도 디지털화폐 도입 고민

주요 선진국들은 기관용 CBDC 연구에 집중
소매용 CBDC는 신흥국 중심으로 도입
우리나라는 기관용 CBDC 도입 가능성 더 높아

전 세계 중앙은행의 94%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위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가운데, 실제 도입 여부를 두고 나라마다 분위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2020년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한 이래 최근 도매용(기관용·wholesale) CBDC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CBDC의 실제 도입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소매용(범용?retail)보다 기관용 CBDC를 먼저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모바일뱅킹이나 각종 페이 등으로 이미 민간 결제 수단이 발달해 있어 소매용 CBDC를 도입할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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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 화폐로, 활용 범위와 사용 주체에 따라 소매용 CBDC와 도매용 CBDC로 나뉜다. CBDC 도입 절차는 통상 네 단계로 분류된다. 제1단계는 조사 및 연구, 제2단계는 개념증명(Proof of Concept), 제3단계는 파일럿 테스트, 제4단계는 최종 출시다.

국제결제은행(BIS)이 86개국을 대상으로 2023년 조사한 결과 응답국의 94%가 CBDC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도 순항 중이다. 제2단계에 해당된다고 응답한 국가는 2019년 42%에서 2023년 54%로 증가했고, 제3~4단계 있는 국가도 같은 기간 10%에서 31%로 증가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CBDC 연구는 제3단계인 파일럿 테스트 단계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실제로 CBDC를 출시해 운영 중인 국가는 아직 일부 신흥국에 국한돼 있다. 현재 CBDC를 출시해 사용하고 있는 곳은 바하마의 샌드달러(Sand Dollar), 나이지리아의 이나이라(eNaira), 자메이카의 잼-덱스(Jam-Dex) 등이다. 이들 국가는 현금 의존도가 높고 국민들의 은행 계좌보유율이 낮다는 공통점이 있어 소매용 CBDC를 도입해 금융 인프라를 개선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주요국, 기관용 CBDC 연구에 집중…"소매용 CBDC 도입 명분 적어"

최근 주요국들은 소매용보다 기관용 CBDC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모바일 뱅킹이나 결제 애플리케이션(앱) 등 이미 다양한 민간 결제 수단이 발달돼 있기 때문에 신흥국과 달리 소매용을 도입해야 할 명분이 충분하지 않아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경우 2016년 소매용 CBDC 프로젝트(Stella)가 아직 연구 단계(제1단계)에 머물러 있다. 반면 기관용 CBDC 프로젝트(Digital Euro)는 2022년 시작해 현재 파일럿 단계(제3단계)에 진입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기관용 CBDC 파일럿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이르면 내년 11월 도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2016년 연방준비제도(Fed)의 연구를 시장으로 CBDC 프로젝트가 완만한 속도로 진행 중이다. 다만 정부의 거래내역 감시나 통제에 대한 우려 등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로 도입을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다.

한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소매용과 기관용 둘 다 연구하는 국가들이 많지만 과거에는 소매용 CBDC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됐고, 최근 신흥국을 중심으로 소매용 CBDC가 도입되기도 했다”며 “최근에는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서 기관용 CBDC 연구를 많이 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일부 중앙은행에서는 최근 소매용 CBDC 도입의 잠정 중단을 시사하기도 했다. 호주중앙은행은 최근 콘퍼런스 연설과 보고서를 통해 “호주에서 소매용 CBDC의 잠재적 이점은 현재로서는 그것이 가져올 어려움에 비하면 미미하거나 불확실하다”며 “현재 호주에서 소매용 CBDC를 발행해야 한다는 강력한 명분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캐나다중앙은행 또한 “소매용 CBDC 연구를 축소하고 더 넓은 범위의 결제 시스템 연구와 정책 개발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기관용 CBDC 도입에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호주중앙은행은 “도매용 CBDC 형태의 디지털 화폐와 인프라가 시장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미래 연구 프로그램의 주요 초점이 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도매용 CBDC가 소매에 비해 잠재적인 이점이 더 크고 덜 문제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은도 기관용 CBDC에 집중…"지급결제 시스템 고도로 발전돼 있어"

우리나라도 최근 한은을 중심으로 기관용 CBDC 연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은은 2020년 CBDC 연구 전담 조직을 신설한 뒤 2022년 말까지 소매용 CBDC 연구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관용 CBDC에 초점을 두고 작년 10월부터 한은과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가 함께 ‘CBDC 활용성 테스트’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는 국제결제은행(BIS), 국제금융협회(IIF)와 함께 국가 간 지급결제 개선 프로젝트인 ‘아고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김소영 금융부위원장(가운데)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 통합별관에서 열린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 공동 기자설명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왼쪽부터), 김 부위원장, 이명순 금융감독원 수석부위원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김소영 금융부위원장(가운데)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 통합별관에서 열린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 공동 기자설명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왼쪽부터), 김 부위원장, 이명순 금융감독원 수석부위원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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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과 금감원, 금융위는 작년 11월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지급결제 시스템이 고도로 발전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매용 CBDC 도입 준비는 장기적으로 관련 연구 및 개발 역량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소매용 CBDC는 연구에 중점을 두고, 기관용 CBDC는 실제 도입까지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이창용 한은 총재 또한 지난 14일 한은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소매용 CBDC를 발행하는 건 외부 경쟁에 의해 소비자 수요를 못 맞춰서 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며 “그래서 은행을 중심으로 기관용 CBDC를 발행하고 은행들의 예금을 토큰화해서 CBDC를 도입한 뒤 민간이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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