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OTT를 찍으면 돈을 더 받는다'고 말하면 영화 출연료를 올려주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제작자 A씨의 말이다. A씨는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사의 거대 자본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배우들의 출연료가 상승했고,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며 한숨 쉬었다.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는 회당 30억원(총 240억원), '경성크리처'는 회당 35억원(총 350억원), 디즈니+ '삼식이 삼촌'은 회당 40억원(40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OTT 제작 드라마의 주연배우 출연료는 편당 4~5억원 선. 평균적으로 8부작 OTT 시리즈 한 편을 찍고 32~40억원 정도를 받아 간다는 얘기다.
제작비가 오른 데는 배우들의 출연료가 수직 상승한 영향이 크다. 제작비 절감은 불황에 빠진 영상산업계 공통 화두다. 제작비 내역 중 단가를 하향 조정해야 할 항목으로 방송 3사가 만장일치 '출연료'를 꼽았다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도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작사 8곳 중 7곳이 배우 출연료가 가장 부담된다고 답했다.
소속 배우를 관리하는 엔터테인먼트사는 출연료 협상의 주체다. 배우와 엔터사는 수령한 출연료를 일정 비율에 맞게 나눈다. 이러한 구조 탓에 배우에게만 과도한 출연료에 대한 자정 노력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에따라 콘텐츠시장에서는 배우 출연료 상한제를 마련해 일괄 적용하거나 정부 차원의 출연료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은 다르지만, 중국은 배우 출연료가 총제작비의 40%를 넘길 수 없고, 이 중 주연급 배우의 출연료는 70%를 넘길 수 없다.
새로운 작업방식으로 주목받는 영화가 있다. 넷플릭스 '지옥', '기생수: 더 그레이'로 전 세계 인지도를 다진 연상호 감독이 사비 2억원을 털어 만든 독립영화 '얼굴'이다.
제작비가 지난해 평균 독립예술 영화 제작비인 3억원보다도 적다. 박정민·신현빈·권해효 등 제법 덩치 큰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들은 새로운 기획에 공감해 출연료를 일당으로 받고 연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태프를 기존 상업영화(60~70명)의 3분의 1수준인 20여명으로 꾸려 최근 3주간 촬영을 마쳤다.
'얼굴'은 작가주의 시선이 뚜렷한 작품으로, 국제영화제 출품이 유력하다. 작품이 잘 되면 '러닝 게런티' 등 출연료를 지급하는 방식의 새로운 길이 뚫릴 수 있다. 업계는 불황 속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위기다.
투자금이 하향평준화 하는 추세 속에서도 배우들의 치솟은 몸값은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제작사는 "업계가 어려우니까 상황을 고려해달라"는 말을 조단역 배우들에게 반복하면서도 주연 배우들에겐 하지 못했다. 투자도 부가수익도 모두 '스타'를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제작자들이 모여 '젊은 배우, 새 얼굴 위주로 기용하자'고 머릴 맞댔다는 '담합설'이 나돌기도 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이제 '중고신인'이란 말이 사라졌다. 내공을 쌓은 다양한 연령대 배우가 여러 플랫폼에서 스타가 되기도 한다. 연기력과 좋은 이미지를 갖춘 저평가된 배우들을 발굴하면서 몸값을 못 하는 배우들의 입지를 좁히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개봉을 앞둔 영화의 주인공 B씨는 "이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정말 많다"며 "좋은 배우들이 다양한 콘텐츠에 두루 기용돼 콘텐츠의 질이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제작시장 침체는 장기적으로 배우들에게도 손해"라며 "일부 배우들 사이에서도 제작사와 상생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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