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해 번역하더니 노벨상까지"…한강 수상 일등공신 영국 번역가

한국어 전문 번역가 없다는 사실에 독학
고유 단어 풀어쓰기보단 그대로 번역해 화제
한강 또한 스미스 번역에 신뢰감 드러내기도

"한글과 한국어는 번역이 힘들어 해외 문학상을 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이나 맨부커상 등을 타지 못했을 때 주로 나오던 말이다. 때때로 이 말은 국 문학이나 소설가를 비판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강이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의 유명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앞선 문장을 부정했다. 이 호평에 한강과 그의 책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20대 영국인 초보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또한 문학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왼쪽)와 저자 한강(오른쪽). [사진=아시아경제DB]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왼쪽)와 저자 한강(오른쪽).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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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BBC 방송 등 외신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식을 전하면서 번역가인 데모라 스미스를 재조명했다. 데보라 스미스는 영국 중부의 소도시 동커스터 출신으로 200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영국에 한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한국어 번역가가 되기로 결정한 후 스미스는 런던대 SOAS 한국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2014년 당시 26세의 젊은 번역가였다. 데보라 스미스가 처음엔 한국이나 한국 문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한국 작품 번역에 뛰어들었다. "내가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라 중에서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문학계가 활발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박사 과정 2년째에 들어서야 더듬더듬 한국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데보라 스미스는 2014년 영국 런던 도서전을 계기로 번역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이 당시 행사의 주빈국으로 지정되면서 관계자들이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문학 번역자를 급히 수소문했는데, 마침 이전에 그가 '채식주의자' 번역 샘플을 현지 출판사에 보냈던 일이 알려져 출간이 성사됐다.

영문으로 번역된 채식주의자는 결국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당시 NYT는 '채식주의자' 영문판('The Vegetarian')을 소개하며 "평범해 보이는 주부가 악몽을 꾸고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야기로 주부의 자기희생은 갈수록 가혹하고 비현실적으로 변한다"고 적었다. 이어 번역에 대해서도 "품격 있는 번역이 한국어 원문을 날카롭고 생생한 영문으로 바꿨으며, 잔인한 세상에서 진정한 결백이 가능한지를 들여다본 한강의 예리한 탐구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호평했다. [사진출처=AFP ·연합뉴스]

영문으로 번역된 채식주의자는 결국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당시 NYT는 '채식주의자' 영문판('The Vegetarian')을 소개하며 "평범해 보이는 주부가 악몽을 꾸고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야기로 주부의 자기희생은 갈수록 가혹하고 비현실적으로 변한다"고 적었다. 이어 번역에 대해서도 "품격 있는 번역이 한국어 원문을 날카롭고 생생한 영문으로 바꿨으며, 잔인한 세상에서 진정한 결백이 가능한지를 들여다본 한강의 예리한 탐구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호평했다. [사진출처=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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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영문으로 번역된 채식주의자는 결국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당시 NYT는 '채식주의자' 영문판('The Vegetarian')을 소개하며 "평범해 보이는 주부가 악몽을 꾸고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이야기로 주부의 자기희생은 갈수록 가혹하고 비현실적으로 변한다"고 적었다. 이어 번역에 대해서도 "품격 있는 번역이 한국어 원문을 날카롭고 생생한 영문으로 바꿨으며, 잔인한 세상에서 진정한 결백이 가능한지를 들여다본 한강의 예리한 탐구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호평했다.


한강 역시 그의 번역에 신뢰감을 드러냈다. 2016년 맨부커상 수상 직후 한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번역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한강은 "저는 소설에서 톤, 목소리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데보라 씨의 번역도 톤을 가장 중시하는 번역"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몽을 이탤릭체로 독백하는 부분의 느낌을 제 감정, 그 톤 그대로 번역하셨다고 느꼈고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다"며 "굉장히 신뢰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스미스는 한국 고유의 단어를 풀어쓰기보다는 그대로 사용하는 번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 만화를 '코리안 망가' 식으로 다른 문화에서 파생된 것으로 쓰는 데 반대한다. 이는 그의 번역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 번역에도 '형'이나 '언니' 같은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현재 그는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한강의 또 다른 작품인 '흰',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서울의 낮은 언덕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 등도 번역했다. 나아가 비영리 번역단체인 출판사 '틸디드 액시스 프레스(Tilted Axis Press)'도 직접 설립해 한국 문학뿐 아니라 아시아 문학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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