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韓, 작년 대미 투자 1위국…반도체서 조선까지 협력 확대해야"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
코리아 소사이어티 컨퍼런스 참여
"대중 수출통제, 기업 피해 고려해야"

미국을 비롯해 각국이 무역장벽을 높이고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교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경제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대(對) 중국 첨단기술 수출통제로 인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이 있는 경우로 기술 규제를 제한하는 한편, 한미 양국이 기존의 반도체·자동차·이차전지 외에 선박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할 경우 양측 간 시너지가 확대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

원본보기 아이콘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패널로 참석해 "한국은 지난해 미국 현지에 투자한 국가 중 투자 규모 1위를 차지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4일(현지시간)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한미 관계의 다음 행보(Next steps for US-Korea Relations)'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유 전 본부장은 "한국의 지난해 대외 투자 중 50% 가량이 미국에 집중됐고 특히 반도체, 전기차, 자동차,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 투자됐다"면서 "지난 10년 사이에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370% 늘었고, 그 어떤 국가의 기업보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액 비중은 97%로 이는 27% 수준인 미국에 비해 높다"며 "한국은 세계 경제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반면, 이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혼란에 대단히 취약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 수출통제에 대해서는 기업 피해 등 관련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전 본부장은 "한국 기업이 만드는 반도체의 40%가량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고 한국이 수출하는 반도체의 55%는 중국으로 가고 있다"면서 "반도체 투자에만 매년 500억 달러의 자금이 필요할 정도이며 각 산업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및 기술규제와 관련해 잘 협력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비용과 편익을 잘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며 "(대중 규제로)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기업이 설 자리가 줄어들게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조치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해 한국 기업들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이를 막고 국가 안보에 위험이 있는 경우로 제한하기 위해 양측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글로벌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군함을 비롯한 선박 건조 분야에서도 한미 양국이 협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미국은 선박 산업이 쇠퇴해 사실상 대형 선박을 자국 내에서 건조할 역량이 없어, 동맹국인 한국과의 선박 분야 협업이 절실한 상황이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올해 글로벌 선박 시장 점유율은 수주량 기준 63%로 한국(23%)의 3배다. 유 전 본부장은 "미국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반도체나 자동차 분야 외에 조선 분야에서도 양국이 깊은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유 전 본부장은 각국의 무역장벽 강화로 광물을 비롯한 핵심 자원 확보의 필요성이 보다 커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주요국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2년 출범한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의 의장국으로 활약하며 자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전기차와 반도체 생산 등에 핵심광물이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광물들은 몇몇 국가가 장악하고 있다"며 "MSP는 이런 글로벌 광물 공급망이 탄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미국의 무역장벽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서는 "무역장벽을 높일 경우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이를 잘 생각해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 세계 모든 수입품에 보편관세 10~20% 일괄 적용, 대중 관세 60% 부과를 예고했다.


유 전 본부장은 30여 년 공직 생활 대부분을 통상 분야에서 활약한 국내 최고 통상 전문가다. 국내 첫 여성 통상교섭본부장인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초 협상에 실무자로 참여했고, 10여 년 뒤 수석 대표가 돼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한 FTA 재협상을 이끌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