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내는 첫 사례가 나왔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물납된 미술품 네 점이 8일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반입된다.
지난해 물납제가 도입되고 처음 있는 일이다. 물납제는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 원을 초과하면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상속세를 물납하려는 납세자가 관할 세무서에 물납을 신청하면 세무서는 문체부에 이를 통보한다. 문체부는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역사·학술·예술적 가치를 심의한다. 필요성이 인정되면 세무서는 납세자의 물납을 허가한다.
이번에 물납된 미술품은 지난 1월 서울 서초세무서에 신청된 열 점 가운데 네 점이다. 서초세무서로부터 신청 내역을 통보받은 문체부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민간 전문가 등 일곱 명으로 심의위를 구성하고, 네 점의 물납 필요성을 인정했다. 중국 작가 쩡판즈(曾梵志)의 '초상(Portrait)' 두 점과 1988년 서울올림픽 미술감독을 맡았던 서양화가 이만익(1938∼2012)의 '일출도(1991)', 전광영의 2008년작 '집합(Aggregation) 08-JU072블루' 등이다.
쩡판즈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되기는 처음이다. 쩡판즈는 중국 현대미술 4대 천왕 가운데 한 명. 중국 사회의 혼란상을 가면을 쓴 모습으로 표현한 '가면' 시리즈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아시아 현대미술 최고가를 기록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3년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유화 '최후의 만찬'이 2330만달러(당시 약 250억 원)에 낙찰됐다. 이번에 물납된 작품 두 점은 지난 4월 케이옥션 경매에 각각 추정가 11억5000만 원과 15억 원에 나왔다. 경매 전 출품은 취소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대 사회와 인간소외를 주제로 왕성하게 작품을 제작했던 경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이라며 "학술·예술적 가치는 물론 활용도, 작품 보존 상태 등을 검토한 결과, 물납 적정성이 충분하다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일출도'는 원경의 바다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극적인 순간을 도해적으로 표현한 유채화다. 소재와 형태, 구도, 색채 등에서 이만익만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고 평가받는다. 문체부 관계자는 "근경의 복숭아와 날아다니는 새 등의 소재를 활용해 희망찬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집합 08-JU072블루'는 직삼각형으로 잘게 자른 스티로폼을 한지로 싸고 실로 묶은 뒤 퍼즐 조각처럼 겹쳐 붙인 작품이다. 한지를 재료로 했지만 동서양을 떠나 인간 내면의 보편성을 담고 있다.
문체부는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내는 사례가 처음 나옴에 따라 앞으로 물납제도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강대금 지역문화정책관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물납 미술품을 받게 돼 고무적"이라며 "첫발을 내디딘 만큼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술계는 첫 물납 사례를 환영하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납세를 위한 물납이 아닌 좋은 작품의 물납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해외 작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고려하면 해외 작품들의 물납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애매한 작품은 오히려 관리 비용만 들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본보기로는 프랑스가 손꼽힌다. 1968년 일반세법에 근거해 처음으로 문화유산 등에 대한 물납제를 시행했다. 그 덕에 피카소의 작품을 물납받아 피카소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프랑스처럼 중요한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을 국가 자산으로 삼아 보존·관리할 방침"이라면서 "확보한 작품을 국민에게 공개해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