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체코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할 경우 다른 유럽 국가들에 추가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란 진단이 나왔다. 체코는 제조 강국이고 유럽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앞서 건설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과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향후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한국전력과 한수원으로 이원화돼 있는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달 30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한국광고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연례정책 세미나에서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체코 원전 수주의 의미와 향후 과제' 주제 발표에서 "체코는 이미 두코바니 1~4호기, 테믈린 1·2호기 등 6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원전 보유국이며 유럽의 제조 강국"이라며 "UAE처럼 원전에 대한 경험이 없는 국가에서 수주받은 것보다 임팩트가 크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최근 유럽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지면서 원전 건설에 대한 요구가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프랑스뿐 아니라 핀란드. 스웨덴, 폴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등이 원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거 유럽 원전 시장의 강자였던 러시아가 배제되면서 한국에게 기회가 열리고 있다. 정 교수는 "독자적 원자력 기술을 보유한 국가이고 철강과 자동차 등 제조업 강국인 체코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유럽 선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3월 체코와 최종 계약을 체결하면 가장 먼저 건설 부문에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체코는 내륙 국가이기 때문에 원전 건설을 위한 부자재는 우선 선박으로 독일 함부르크 항으로 운송한 뒤 내륙으로 약 800㎞를 더 이동해야 한다. 이를 위한 도로 및 교량 정비도 한국 건설회사가 수주하게 될 전망이다.
다만 정 교수는 현재 한전과 한수원으로 이원화돼 있는 원전 수출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한수원은 한전의 100% 자회사인데, 한국전력기술주식히사, 한국핵연료주식회사도 역시 한전의 자회사"라며 "한수원이 원전 수출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수직계열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한 "해외 원전 건설을 위한 파이낸싱을 위해서라도 한수원을 공사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한 "현재 원전 안전 규제에 임의 규제가 많아 국내 원전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다"며 "규제 체제 개선이 필요하다"라고도 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우영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 정책연구본부장은 "세계 원전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유럽 국가들이 최대 수요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체코가 유럽 원전 수출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박 본부장은 또한 제조업 기반이 강한 체코 현지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면 인근 유럽 국가 진출 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향후 10년 후에는 대형원전보다는 소형모듈 원자로(SMR)나 비경수로형 등 신규 원전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원전 산업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진흥전략본부장은 원전 시장에서 중국, 러시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미국과 원전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본부장은 "미국 원자력 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난 7월 공화당,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통과한 '어드밴스드 액트(Advanced Act)'에 의하면 외국 자본이 미국 원자력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기업에 투자해 원전 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임 본부장은 "미국과 협력을 넘어 동맹으로 발전하면 미국 이외 3국에 진출할 때도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임 본부장은 또한 "태양광, 풍력이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며 "SMR 등 차세대 원자력을 설계할 때는 재생에너지와 공존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노백식 한국 원자력산업협회 부회장은 "원전을 수출하는데 우리나라만 일방적으로 이익을 챙길 수는 없다"며 "상대방과 상호 윈윈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코트라(KOTRA) 김준한 구미CIS팀장은 "체코는 우리나라처럼 작은 국가이기 때문에 무역과 제조산업이 발전했고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많다"며 "엔지니어링, 미래 모빌리티, 첨단기술, 에너지 등에서 앞으로 비즈니스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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