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두 국가론' 임종석, 아직도 북한을 믿나

북한이 통일 부정하니 따르자는 '통일 운동가'
'평화'로 포장했지만, 헌법 훼손하겠다는 발상
北 선의에 기댄 결과는 핵 개발…원칙 지켜야

[기자수첩]'두 국가론' 임종석, 아직도 북한을 믿나 원본보기 아이콘

"통일, 하지 맙시다." 열 달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했던 말과 닮았다. 평생 '통일 운동가'를 자처해온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야기다. 북한이 '통일 폐기'를 위한 헌법 개정을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두 국가론'을 수용하자고 한다. 친정 민주당도 아니다 싶은지 선을 긋고 나섰다. 남과 북의 괴리를 느껴온 국민에게 이게 왜 위험한 주장인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임수경의 방북을 주도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586세대에겐 남다른 기억일 것이다. '민족 통일'을 외친 운동권 이력으로 여의도에 발을 들였고,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지냈다. 발언이 가져올 파장쯤은 충분히 고려했을 유력 정치인이다. 이런 사람이 통일을 포기하자고 할 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평화'라는 명분만 믿었다간 더 큰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면 평화가 보장되는가. 역내 구도는 그렇지 않다. 당장 북한의 중·러 의존도가 심화할 공산이 크다. 중국과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한반도에 개입할 길이 열린다. 트럼프 행정부 같은 세력이 미국에 집권하면, 북·미 수교 같은 '코리아 패싱'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평화적 두 국가론'은 헌법적 권리를 훼손하는 발상이다. 영토를 반으로 가르고, 북핵 억제를 타국에의 '내정 간섭'으로 만든다. '통일'이라는 헌법적 사명에 함축된 희생과 기대도 간과했다.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수백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을 보호할 근거도 없어진다.


평화를 선의에 기댄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모두 경험했다. '햇볕정책'을 핵 개발로 갚은 게 북한이다. 수해 지원도 마다하고 미사일을 쏴대는 저 집단은 이미 남북관계를 '교전 상태'로 규정했다. 쓰레기 풍선이 넘는 선(線)이 '국경'이 되는 순간, 그때야말로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통일에 대한 불신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져 왔다.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과 역사가 지켜온 합의를 흔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 지도자도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통일 폐기'의 명분을 남한 정치인이 만들어 준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아무리 막막해도 지켜야 할 '원칙'이란 게 있다. 동독은 지금의 북한처럼 '개별 국가'를 주장했지만, 서독은 수용하지 않았다. 동독 주민들에 대한 헌법상 보호 의무를 지속한다는 방침도 명확히 유지했다. '원칙'을 견지한 태도가 결국 통일을 앞당겼다는 것이 역사가 내린 평가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