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교수 "내년 지지부진한 경기 지속…뱀처럼 예민한 감각 지녀야"

2025 트렌드 코리아 출간 기자간담회
"원대함 사라져…내일보다 오늘이 중요"
내년 소비트렌드 키워드 '스네이크 센스'

"저는 1960년대생이다. 대한민국이 굉장히 고도 성장하던 시기에 청춘을 보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수 있던 때였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교수는 2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5 트렌드 코리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소개하던 중 이같이 말했다.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자기고백 같은 말은 김 교수가 품고 있던 안타까움을 드러낸듯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젊었을 때처럼 성장의 달콤함을 느끼기 힘든 현실을 살고 있고 그래서 안타깝다는 감정. 김 교수는 (미래에 대한) 원대함을 기대하기 힘들기에 내일보다 오늘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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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17년째 '트렌드 코리아'를 출간하고 있는 김난도 교수는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책의 서문을 가장 늦게 썼다고 했다. 서문을 쓰던 중 펜을 놓고 하늘을 보며 '원대함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원대한 꿈과 희망을 품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지금의 지지부진하고 답답한 경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경기가 급격히 좋아지지도 않지만 금융위기와 같은 급격한 침체도 예상되지 않는 답답한 흐름이 지속되면서 작고 민감한 것들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년 흐름을 주도할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에 '현재 지향적'이며 '작다'는 두 가지 요소를 반영한 키워드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 10대 소비트렌드로 ▲옴니보어 ▲#아보하 ▲토핑경제 ▲페이스테크 ▲무해력 ▲그라데이션K ▲물성매력 ▲기후감수성 ▲공진화 전략 ▲원포인트업을 꼽았다.


또 10대 소비트렌드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내년 키워드로 '스네이크 센스(Snake Sense)'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내년이 뱀의 해인데 감각이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동물"이라며 "기회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은 해인만큼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날카로운 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난도 교수는 "애초 '스네이크 매직(Snake Magic)'을 키워드로 잡고 놀랄만한 성장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아무리 봐도 그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세세하고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0대 소비트렌드의 첫 번째 키워드 '옴니보어(Omnivoeres)'는 잡식성을 뜻한다. 김 교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면서 아이돌과 임영웅의 음악도 즐기는 사람들처럼 문화적 취향이 굉장히 다양한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며 "소비 행태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전형성에 따르지 않고 굉장히 자유분방하게 소비하는 이들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아보하'는 2018년 김 교수가 제시했던 '소확행'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약간 변형된 개념이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로 지극히 평범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는 그냥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의미다.


"소확행 개념이 너무 확산되면서 본질을 잃고 과도하게 피로해졌다. 애초 소확행이 과시의 의미가 아니었는데, 행복을 과시해야 한다는 강박이 커졌고 그런 강박에서 탈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 삶의 태도를 #아보하라 이름 붙였다. 소확행에서 나는 꼭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빠지고 자신에게 더 집중하려는 흐름을 뜻한다."


김 교수는 #아보하가 논쟁적인 트렌드라며 걱정스럽다고도 했다. "#아보하가 출연한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활력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대함을 꿈꾸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되고 하루의 작은 일상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젊은이들이 더 노력해서 더 나은 내일을 갖고 싶다 하는 야망을 자꾸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대단히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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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핑 경제는 피자에서 토핑이 중요하듯 꾸미는 것이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못 생긴 신발의 대명사였던 크록스가 지비츠 꾸미기로 인기를 끄는 사례를 언급하며 '꾸안꾸'가 아니라 꾸미고 꾸미고 또 꾸민다는 뜻의 '꾸꾸꾸'가 새로운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언젠가부터 서울에서는 타요 버스가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페이스오프는 무생물인 기계에 사람의 표정을 입히는 것처럼 상품이 최대한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흐름을 뜻한다.


김 교수는 "경제가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결국 기술이기 때문에 매년 10개 키워드 중 하나는 반드시 기술과 관련된 키워드를 정한다"며 "올해는 페이스테크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무해력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하츄핑처럼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을 선호하는 흐름을 반영한다. 김 교수는 "원대함이 사라자고 갈등이 심해진 사회이기 때문에 무해한 것에 대한 사랑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라데이션K는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를 구분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흐름을 뜻한다. 한국적인 것과 아닌 것을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으며 한국적인 것 중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음을 뜻한다. 김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외국인 인구의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민종 국가로 분류한다"며 "한국은 이미 그 기준을 넘었다"고 설명했다.


물성 매력은 온라인으로 송금되는 월급보다 월급봉투에 담긴 현금으로 받았을 때 사람들이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손에 잡히는 상품의 매력을 뜻한다. 김 교수는 "물성을 느끼면 충동구매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며 "기업도 점점 소비자들이 상품의 물성을 느끼게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기후감수성은 말 그대로 기후가 점점 더 소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의미이고 공진화는 상호연결성이 높아진 오늘날의 경제에서는 기업들도 협업을 통해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현대는 각자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커진 시대라고 설명했다.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졌고 자기계발의 중요성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과거에는 자기계발의 개념도 과거와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자기계발이 스스로를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수준이었는데, 오날날에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만 계발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며 이러한 흐름이 원포인트업이라고 설명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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