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랭한 국내 증시 큰손들 "K-밸류업 지수‥투자지표로 삼기 어려워"

K-밸류업 지수 선정기준 모호·투자범위 좁아
밸류업 지수 투자 지표로 삼는 건 리스크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 혹독한 평가

국내 증시의 '큰손들'인 연기금,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이 정부가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자본시장에서는 연기금, 공제회가 향후 어느 정도 밸류업 종목을 매수하거나 밸류업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는지 등이 K-밸류업 성공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기관투자가들은 K-밸류업 지수에 대해 투자참고 지표로서 역할을 하기 어려우며, 100개 종목이라는 좁은 범위에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는 것은 투자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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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에 참고할 만한 내용 없어‥선정 논리도 이해 안 돼"‥다소 혹독한 평가

26일 A 공제회 CIO는 "이번에 발표된 지수는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며 "기준이 다소 희석된 느낌이고 무엇보다 핵심인 세제 문제 등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단순한 거래소 지수 산출이라 직접적·긍정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 전략에 크게 참고할 만한 내용은 없다"며 "금융지주만 봐도 신한과 우리가 포함되고 KB와 하나가 제외됐는데 그 선정 논리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언급했다.


밸류업 지수에는 시가총액뿐만 아니라 수익성, 주주환원 등 다양한 조건을 만족한 100종목이 포함됐다. 하지만 기관투자가들은 밸류업 지수가 시장에서 실질적인 주가 상승효과를 내기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B 공제회 CIO는 "밸류업 지수가 아직 시장에서 효과를 내기는 어려운 걸음마 수준"이라고 말했다.

100개 종목 압축된 지수만 추종하는 것 '위험'‥日서 부작용 관측, 기관투자가에는 부담

시장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연기금 입장에서 100개 종목으로 압축된 밸류업 지수에 큰 규모로 투자하는 것이 투자 정책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코스피200지수 등 시장 대표지수를 놔두고 굳이 검증되지 않은 좁은 범위의 종목에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C 연기금 CIO는 "우리보다 앞서 제도화한 일본의 경우를 보면 올해 일본 대표지수 대비 밸류업 지수 성과가 일부 하회하고 있다"며 "이처럼 한국도 양 지수 간의 성과 차이는 분명히 발생할 것이고 그에 대한 부담은 투자자가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 도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고객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수탁자 책임을 지닌 기관투자가 입장에서 다양한 투자 선택지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지수의 개발 그 자체보다 시장을 구성하는 기업과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수 편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업실적이 좋아야 하고, 주주환원이 이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세제·상법 등의 정비, 장기투자자에 대한 혜택 강화, 정책변수 최소화 노력 등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변화만이 한국 시장을 바꿀 수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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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적 의미' 지수→밸류업 지수 '리밸런싱 효과'로 긍정적 변화 가능성

밸류업 지수가 투자자들에게 다소 실망감을 안겨줬지만 전문가들은 향후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사업 재편)' 과정에서 긍정적 효과가 발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기관투자가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그래도 이 지수에 편입이 되려면 밸류업 공시를 해야 하고, 다른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며 "지수에 편출되지 않고 또 편입되려는 압박 요인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배당 등 주주가치를 위한 노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각 기업의 긴장감을 높여 자연스러운 경쟁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리밸런싱이 이뤄지는 내년 6월 이후엔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을 시 기존에 포함된 기업도 밸류업 지수에 제외될 수 있다. 허 연구원은 "올해 밸류업 기대로 이미 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연말이 다가올수록, 시장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을수록 밸류업 관련 기업들 만한 대안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24일 밸류업 지수의 선정 기준과 구성 종목을 발표했다. 기존에 증시에서 밸류업 수혜주는 금융·자동차 업종에 집중됐었는데, 이날 나온 밸류업 지수에는 예상을 깨고 IT, 산업재 기업도 다수 포함됐다. 특정 산업군에 편중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고르게 편입되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준엔 미달해도 미리 기업 가치 개선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은 특례 적용을 받아 지수에 들어갔다. 시가총액 5위인 현대차와 신한지주·우리금융지주·미래에셋증권 등 일부 금융사가 이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시가총액 3위와 4위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주주 환원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 탈락 요인이 됐다. 금융 대장주인 KB금융은 주주 환원 측면에서 호평받았지만 수익성이 낮아 탈락했다. SK텔레콤, KT 등 통신사는 전부 포함되지 못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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