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반도체 업계 제왕으로 군림했던 인텔이 경쟁사의 인수 타깃으로 전락하는 등 위상에 흠집이 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분사하며 대대적인 쇄신에 나선 상태다. 이에 월가에선 인텔의 미래에 수십억달러를 걸어보려는 투자자가 등장한 가운데 인텔이 분위기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지난주 미 반도체 대기업 퀄컴의 인텔 인수 타진 소식을 보도했다. 인수합병(M&A) 자체는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한때 반도체 왕국을 일군 기업이 경쟁사의 인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점은 현재 인텔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0년만 해도 2900억달러에 달했던 인텔의 시가총액은 현재 퀄컴(약 1880억달러)의 약 절반 수준(930억달러)으로 떨어진 상태다.
인텔은 1968년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대 후반부터 50년 가까이 중앙처리장치(CPU) 설계로 반도체 업계를 호령했던 인텔이었지만 인공지능(AI) 등 신사업 진출에 한 발짝 늦으면서 도태될 위기에 놓였다. 2분기 실적에선 1년 새 16억1000만달러 순손실로 전환하면서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2021년만 해도 매출이 인텔의 3분의 1 수준이었던 엔비디아가 시총 3조달러를 돌파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벼랑 끝에선 인텔에도 희소식이 전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22일(현지시간) 세계 4대 사모펀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가 인텔에 50억달러(약 6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인텔이 아폴로의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으며 투자 규모가 변경되거나 무산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폴로가 인텔에 제안한 투자 형태는 ‘유사 지분 투자’(equity-like investment)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의 실적에 따라 이익이나 손실을 함께 얻고 부담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미국에서 부실 투자 전문 기업으로 출발한 아폴로는 현재 보험 및 기업 인수 분야 투자에서 명성을 쌓은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번 아폴로의 인텔 투자 제안 소식은 인텔이 내놓은 새 경영 전략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보낸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최근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하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하는 등 대대적인 경영 쇄신에 돌입했다. 앞서 2분기 어닝 쇼크 이후에는 100억달러 비용 절감을 위해 15% 감원 및 연간 자본지출 17% 감축 방침도 제시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인텔의 앞날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역전의 발판은 남아있다는 평가다. 그중 하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1.8㎚(18A·1㎚=10억분의 1m) 공정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이는 내년에 2나노 공정에 돌입하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나 삼성전자보다 한발 앞서는 셈이다.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분석가는 "인텔의 미래는 내년 생산이 예정된 차세대 칩 제조 기술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며 "기술 리더십을 되찾으면 수익률을 개선하고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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