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밴더스 감독 영화 ‘퍼펙트 데이즈’(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가 없다. 그조차 이 영화에서는 별 의미 없다)의 주인공 시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하는 일을 한다. 일하는 날은 매일 신사 앞 벤치에서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고, 올림푸스 ‘뮤’ 필름 카메라로 나무를 올려다보며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가 찍은 것이 나무인지 햇빛인지 바람인지 이 모두인지 말하기 어렵지만, 단 하나 그가 있는 자리인 ‘현재’라는 건 분명하다. 현재는 하나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 내가 관계하는 모든 지금(至今 · 여기까지)을 말한다.
같은 기종의 카메라를 30년쯤 전에 한동안 썼다. 이 카메라는 다른 자동카메라들에 비해 작고 가볍고 초점 기능이 좋아서 사진이 선명하다. 사진 찍는 사람이 할 일이란 렌즈 덮개를 밀어서 열고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어디를 찍고 어디를 버릴 것인지, 언제 셔터를 누를지 결정하는 일 정도다. 별다른 기술도 기교도 필요하지 않고 내가 바라보는 현재를 그대로 무심히 그러나 깔끔하게 담아 줬다. 다른 자동카메라들과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카메라였다.
그는 필름 한 롤을 다 찍으면 현상소에서 사진을 인화한다. 사진들을 손에 쥐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중 간직할 것과 버릴 것을 고른다. 비슷한 여러 사진들 중 좋은 사진과 그렇지 못한 사진, 남길 사진과 버릴 사진의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그 기준은 개인의 내면에 있다.
멋지거나 아름답고 메시지가 분명한 사진이 좋은 사진일 수 있다. 무심하고 건조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사진도 좋다. 인간의 흔적으로서 감각의 깊이를 말하자면 후자에 더 애정이 간다. 늘 같아 보이는 나무의 흔들림과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빛이지만 때마다 똑같지 않은 것은 화자의 마음이고 태도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순간은 화자와 청자의 무의식만을 건드리고 말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떤 격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가 사진을 고르는 기준 같은 것은 말하기 어렵다. 통속적으로 잘 찍힌 것이 아니라 그저 이유를 말하기 어려워도 마음이 움직이는, 왠지 끌리는 사진이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찍는 순간 손끝의 사소한 차이가 불러오는 결정적 차이. 그가 고르는 사진은 다른 모든 사진과 아주 비슷한 단 한 장이다. 매일 밤 비슷하지만 다른 그의 꿈처럼, 다른 모든 날과 아주 비슷한 단 하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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