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보험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새 국제회계제도(IFRS17) 도입 후 처음 맞는 금리 인하에 생·손보 업권별 체감온도도 다르다. 보험사별 포트폴리오에 따라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ABL생명은 이날 2000억원 규모의 무보증 후순위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10년 만기에 5년 후 콜옵션(조기 상환권)이 붙었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3000억원까지 증액할 수 있도록 발행 한도도 열어뒀다. 공모 희망 금리는 5.4~6%의 고정금리를 제시했다.
한화생명은 오는 24일 6000억원 규모로 30년 만기 5년 콜옵션 조건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할 예정이다. 지난 11일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당초 계획한 3000억원을 웃도는 모집액을 기록해 발행액을 2배로 늘렸다. 흥국화재도 오는 26일 20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지난달엔 메리츠화재(6500억원)·한화손해보험(3500억원)·KDB생명보험(2000억원) 등이 잇따라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이들 보험사가 자금조달에 나선 건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재무 건전성 악화를 사전에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1분기 생보사의 경과조치 전 신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현황을 보면 ABL생명과 KDB생명은 각각 114.3%, 44.5%로 금융당국 권고치(150%)를 밑돈다. 한화생명은 173.1%로 당국 권고치보다 높지만 생보사 평균(200%)보다는 낮다. 손보사의 경우 메리츠화재는 226.9%로 손보사 평균(216.1%)보다 높지만 한화손해보험은 172.8%로 이보다 낮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능력이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보험연구원은 기준금리가 1%포인트 하락하면 생보사 킥스가 25%포인트, 손보사는 30%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8일(현지시간) 4년 반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췄고 연내 0.5%포인트 추가 인하를 예고했다. 한국은행도 이에 발맞춰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보험사 킥스가 연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가 내리면 보험사의 부채변동이 더 크게 발생해 만기별 현금흐름 매칭 등 더 정교한 관리가 요구된다"면서 "금리하락에 따른 자본관리를 위해 장기채권 매수뿐 아니라 만기 30년 국채선물, 공동재보험 등 다양한 자본관리 방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IFRS17이 도입되기 전 RBC(옛 지급여력제도) 체제였을 땐 금리가 내리면 재무 건전성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다. 지급여력비율은 부채 대비 자산 규모로 평가하는데 RBC에서는 부채는 고정이고 자산만 시가로 평가해 기준금리 인하 시 자산가치가 올라가 재무 건전성이 좋아졌다. 하지만 킥스에서는 부채까지 시가로 평가되면서 보험사의 자산·부채 포트폴리오에 따라 영향이 다르다.
업계에서는 생보사가 금리 인하에 따른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으로 본다. 생보사는 손보사보다 만기가 긴 보험상품을 취급해 투자금 회수 기간을 뜻하는 '부채 듀레이션'이 길기 때문이다. 통상 금리가 하락하면 자산과 부채의 평가가격이 올라가는데 생보사는 부채 듀레이션이 길어 부채가 자산 증가 속도보다 빨라진다. 부채가 늘면 순자산 감소로 자본도 감소한다. 자본 감소는 킥스 하락에도 영향을 준다. 생보사 관계자는 "연초부터 금리 인하에 대비해 저축보험보다 건강보험 판매를 늘렸다"면서 "투자 부문도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공시이율과 예정이율이 하락하게 돼 보험 가입자에게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공시이율은 금리연동형 보험상품의 적립금에 적용하는 이자율로 은행의 예금 이자율과 비슷한 개념이다. 공시이율이 낮아지면 보험 만기·해지 시 고객이 받는 환급금이 줄어든다. 예정이율은 보험사가 신상품을 선보일 때 보험료 산정에 기준이 된다. 예정이율이 낮아지면 보험료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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