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가정부 취급받던 '오모니'의 위대한 유산

자이니치 반세기 역사 돌아보는 '파친코'
주인공 선자, 잠재적 가정부로 불린 '오모니'
인생의 즐거움 하나 없이 죽도록 고생만
밑바탕의 사랑, 다문화 공생으로 범위 확장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약 200만 명. 일본의 패전과 함께 많은 사람은 귀국했다. 약 60만 명은 남았다. 그렇게 터전을 잡은 조선인과 후손을 자이니치(在日)라고 한다. 일본 전체 인구에서 1%(약 100만 명)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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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 '파친코'는 이들의 반세기 역사를 선자(김민아·윤여정)의 궤적으로 돌아본다. 어린 선자가 일본에서 마주한 삶은 모질고 혹독하다. 하루하루가 차별과 냉대의 연속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경기 불황으로 살림까지 어려워진다. 선자는 주저앉지 않는다. 노상에서 김치와 국수를 팔며 두 아이를 반듯하게 키워낸다.

선자 같은 재일 한인 1세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오모니'다. 우리말 '어머니'의 일본어 가타카나 표기다. 일본어에도 어머니를 뜻하는 '오카아상'이란 단어가 있다. 하지만 재일 한인 사이에선 원어 발음을 살린 '오모니'가 더 많이 쓰인다. 그 의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한인의 어머니로 국한되지 않는다. 모국어에 대한 애틋한 감정,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고민 등이 얽혀있다.


예부터 어머니는 민족을 상징하는 기호였다. 단순히 아이를 출산해서가 아니다. 아이가 법·문화적으로 사회 일원이 되기까지 양육도 맡는다. 집단의 생산자 겸 전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서 종종 배제됐고,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파친코'는 이런 낡은 틀을 오모니를 앞세워 뒤집는다. 비운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복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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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모니라는 말은 제국 질서에 봉사하는 조선인의 표상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으로 옮겨온 일본인 가정들은 일하는 사람을 두는 일이 흔했다. 가사나 육아를 돕는 한인 여성들은 미혼이면 '기지배'나 '오네야', 기혼이면 오모니로 불렸다. 오모니는 조선의 보통 어머니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용인이었던 셈이다. 진짜 이름으로 불리거나 하나의 인격으로 여겨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모니에 비대칭적 권력관계와 제한적 관계 맺음의 양상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은 기억이라는 회로를 통해 전후까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차은정 서강대 교수는 저서 '식민지의 기억과 타자의 정치학'에서 일제강점기에 경성에서 소학교를 다닌 일본인들의 서사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오모니에서 가족으로서 역할 가치를 크게 생각하지 않고, 범위만 조선인 일반 여성으로 확장했다. 조선을 추억하는 매개체로 불러들여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모든 조선인 여성을 잠재적 가정부로 바라보던 식민지적 인식을 자각 없이 재생산한 것이다.


그렇다고 오모니를 식민지적 인식의 재생산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많은 재일 한인이 이 호칭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오모니는 특수한 형편의 역사적 산물과 같다. 특히 모국어에서 파생돼 나름의 방식으로 떠도는 말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구 종주국에 남아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나가는 표류물 같은 처지와 닮아있다. 분단된 두 나라의 국어나 일본어로 깔끔하게 환원될 수 없는 사정 또한 어느 나라 역사에도 편입되지 못하는 삶과 궤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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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을 이어받은 재일 한인 2세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관련한 기사, 수필, 대담 등을 쏟아냈다. 내용은 대부분 오모니의 험난한 인생 역경이었다. 강인한 어머니, 인고의 어머니, 글을 모르는 어머니, 생계를 책임지는 가모장, 억압 하의 희생자…. 하나같이 모성의 본질화라는 위험성을 끌어안고 희생한다.


이 같은 경향에 한영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연구원과 김인수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교수, 정호석 세이가쿠인대학교 정치경제학부 준교수는 공동 집필한 '경계와 재현'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1980년대 뒤에 나타난 재일 한인 1세 여성에 대한 본격적인 생애사 기록을 예비하는 것으로서, 문자화되지 못해 비가시적인 영역에 머물던 재일 한인 1세 여성들을 새로이 인식하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파친코'는 이렇게 누적된 기록을 구체화하고 발전시킨 산물과 같다. 선자는 낯선 땅에서 적극적으로 '어머니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내면화한다. 얼굴에는 고생을 이겨낸 흔적이 깊게 새겨진다. 인생의 즐거움 하나 없이 고생만 한다. 오직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려는 일념으로 삶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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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탕에는 '오모니의 사랑'이 있다. 자식에 대한 편애 이상의 마음이다. 고령에 진입하면서 다문화의 공생으로까지 범위를 확장한다. 세상의 편견과 차별이 여전해도 용서와 화해로 지난 기억과 삶을 위로한다. 순간 선자는 역사의 산증인에서 적극적인 자기표현과 욕망의 주체로 변모한다. 우리와 같은 시간 축에 묶인 '동시대인' 혹은 새로운 일깨움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또 다른 오모니의 힘이 생겨날 가능성을 가리키며.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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