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고인민회의 왜 안 열리나…'통일 폐기' 딜레마

'통일 삭제' 지시해놓고 주민에게 설명 못해
핵무력 강화만 외칠 뿐…'명분' 없는 김정은
조한범 "최고인민회의 연내 개최 불투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일 지우기'에 나섰지만, 정작 입법권을 행사하는 최고인민회의는 열리지 않고 있다. 남과 북을 '두 국가'로 보겠다는 방침이 북한 헌법에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통일 폐기'를 지시했지만, 명분이 없어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를 연 뒤 추가 소집을 하지 않고 있다. 최고인민회의는 입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우리 국회와 유사한 개념으로 비교된다. 다만 북한은 사실상 노동당이 결정한 사항을 그대로 추인하는 역할만 맡고 있는 수준이다.

'통일 삭제' 명분 없는 김정은, 후속조치 지연
수해 지원 제안 거절한 북한.

수해 지원 제안 거절한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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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인민회의는 5년 임기의 대의원으로 구성된다. 현 구성원은 2019년 3월 선출된 14기 대의원이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올해 3~4월께 차기 대의원을 선출하고 새로운 상임위원회를 꾸렸어야 했다. 당초 최고인민회의 소집과 대의원 선출이 늦어지는 이유로는 '헌법 개정'이 꼽혔다. 남북 경계를 '국경선'으로 못 박고, 민족·통일 개념 폐기를 반영하기 위해서란 것이다.


북한은 지난 연말 전원회의와 올해 초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남측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남북관계에 관해 '두 국가론'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통일'과 관련한 정책을 삭제하고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한 것도 이 시기다. 김 위원장의 이런 지시에 따라 헌법에 새로운 영토 조항을 반영하고 통일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등 개정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주요 계기마다 나오던 대남 메시지도 내지 않는 등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 정권 수립을 기념하는 9·9절 76주년 행사 때도 으레 해오던 '핵무력 강화'만 외쳤을 뿐 별도의 대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여름 압록강 일대 대규모 수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 제안에도, 지난달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통일 독트린'에 대해서도,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조한범 "딜레마 빠져"…태영호 "조총련 반발"
수해 현장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수해 현장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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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일가'의 뜻대로 돌아가는 북한이라고 해도, 최고인민회의 개최 사실이나 헌법 개정을 주민에게 공지하지 않고 진행할 순 없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을 통해 '정론' 등 설명하는 절차를 가져왔다. 하지만 통일 개념 폐기의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만 있었을 뿐 자세한 후속 조치나 변화의 이유를 설명한 적이 없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에선 주민들이 '통일'을 목표로 삼고 사는데, 이걸 왜 폐기하는지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북한도 통일을 왜 폐기해야 하는지 명분이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며 "김정은 본인도 올해 초 통일 개념을 없애라고 지시한 뒤 추가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사무처장도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얼마 전 북한에서 (적대적 두 국가론 관련) 지침서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내려보냈는데, 조총련 원로들도 어떻게 통일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한 바 있다. 태 사무처장 역시 "아직도 북한 내부에서 (통일 개념 삭제 등을) 체계화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연내 개최 불투명…"美 대선 전 도발 실익 無"
새로운 전술미사일 무기체계 점검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새로운 전술미사일 무기체계 점검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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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북한이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상황을 관망하다가 7차 핵실험 등 중대한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북한과의 '협상'을 제시했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속한 민주당도 '비핵화' 언급을 자제하는 만큼 북한이 도발할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도 있다. 섣부른 도발로 차기 행정부와의 협상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아울러 조 석좌연구위원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두 달 전에 공고하게 돼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현재까지 아무런 공지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오는 11월, 나아가 올해 안에 차기 대의원 선거가 없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대의원의 5년 임기가 지켜지지 않는 사례는 김정일 시대 마지막 대의원 선거였던 12기 때가 있다. 당시 11기를 2003년 8월에 선출한 뒤 12기 선거를 2009년 3월에 진행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 5년 주기 선출이 지켜지지 않은 건 처음이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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