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독과점 지위에 있는 플랫폼 기업의 반칙행위를 막기 위한 플랫폼 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을 결국 백지화했다. 공룡 플랫폼들의 독과점 행위를 적시에 규제하고 시장경쟁을 회복하기 위해 별도법을 제정하는 대신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로 입법 방향을 최종 정리한 것이다. 핵심이었던 사전지정제 도입도 중복·과잉 규제 우려 등 업계 반발을 고려해 결국 폐기됐다.
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메프 재발방지 입법방향'을 이날 당정협의회에 보고하고 플랫폼 독과점과 갑을 분야의 제도개선을 위한 입법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지난 2월 업계의 거센 반발에 밀려 플랫폼법 원안 재검토에 들어간 지 7개월 만에 기존 법 개정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시장의 갑·갑(독과점), 갑·을 관계에서 나타나는 반경쟁적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추진한다. 개정안은 독점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을 법으로 '사전지정'하는 대신 법 위반 행위가 발생한 경우 '사후추정'키로 했다. 당초 추진해온 사전지정제가 빠졌지만, 사후추정을 위한 정량적인 기준이 들어가면서 사실상 사전지정의 효과를 일부 가질 수 있도록 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사후추정 대상은 ▲시장 점유율 60%·이용자 수 1000만명 이상이거나 ▲3개 이하 회사의 점유율이 85% 이상이고 각사별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이며, 이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국내 매출액 4조원 이하 플랫폼은 제외된다.
중개, 검색, 동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운영체제(OS), 광고 등 6개 서비스 분야가 이 법 적용을 받는다. 남동일 공정위 사무처장은 "이들 6개 서비스 영역에서의 실태조사 법제화를 통해 위반행위 발생 시 법 집행의 신속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태조사 결과의 공개 여부는 향후 입법 과정에서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
금지되는 반칙 행위는 자사우대(알고리즘 조작 등으로 자사 상품을 경쟁 상품보다 유리하게 취급하는 행위), 끼워팔기(자사 플랫폼 서비스와 다른 상품·서비스를 함께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행위), 멀티호밍 제한(타사 플랫폼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 최혜대우 요구(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타사 플랫폼보다 유리한 거래조건을 요구하는 행위) 등 4가지다. 공정위는 업계 반발을 고려해 지배적 사업자 지정 기준과 반칙행위 범위를 최소화했다.
개정된 법안이 시행되면 공정위가 플랫폼사의 불법행위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위법이 아니라는 입증 책임은 사업자가 져야 한다. 사업자 입증 책임 강화를 통해 사건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연합(EU) 디지털시장법(DMA)처럼 입증책임을 사업자에 사실상 완전히 전환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법원의 판결을 구하는 과정에 있어서 입증책임 부담이 상당 부분 기업에 쏠리게끔 한다는 점에서 사후규제로도 당초 법 제정의 효과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신동열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사전지정제를 포함한 신규 법 제정을 고집하지 않아도 기존 공정거래법 개정만으로도 당초 의도했던 입법의 목적이나 효과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며 "(기존 법 개정으로) 규제 대상자의 순응도를 높이고 규제를 시장에 빠르게 안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법 위반이 확인되면 과징금과 함께 사업자의 거래를 즉시 중단할 수 있는 업무중지명령 등을 부과할 수 있다.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최대 8%로 기존(6%) 대비 상향했다. 유사한 입법을 발의 또는 완료한 선진국들의 과징금 비율(최대 10%)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현재 전자상거래법에도 도입된 임시중지명령제도는 요건의 엄격성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왔다"면서 "지배력이 강한 소수 플랫폼을 대상으로 규율하는 문제여서 요건은 엄격하지만 법리를 잘 판단해 (이 제도가) 필요한 경우 적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후추정 채택, 사업자 입증 책임 강화 등이 당초 플랫폼법 추진 목표를 달성하기엔 충분치 않은 대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거대 플랫폼을 타깃으로 한 명확한 법률적 규제 장치를 만들어, 시장 획정 및 시장지배력 판단을 미리해 플랫폼 반칙 행위 처리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게 하자는 게 당초 취지였다는 점에서 법적 견제가 너무 늦고 방법도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사후추정 규율 대상이 좁고, 해외 플랫폼들과의 역차별 우려 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사후 추정될 것으로 보이는 지배적 플랫폼으로 검색(네이버), 앱마켓(구글, 애플), SNS(카카오) 등을 거론한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정산 및 환불 지연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대규모유통업법 규제 대상에 일정규모 이상의 플랫폼 기업(통신판매중개업자)을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지정 기준은 ▲연간 중개거래수익 100억원 이상 또는 중개거래금액 1000억원 이상 ▲연간 중개거래수익 1000억원 이상 또는 중개거래금액 1조원 이상의 사업자 등 2개안이 논의됐다.
또 이들의 정산 기한을 단축하고, 판매대금을 은행 등 신뢰성 있는 기관에 맡기는 방안을 의무화한다. 정산 기한은 전통적 소매업(40일)보다 짧게 '구매확정일로부터 10일에서 20일 이내' 또는 '월 판매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 등 복수안에서 정한다. 판매대금이 다른 용도로 사용돼 판매사, 소비자 등의 피해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플랫폼이 제3의 기관을 통해 판매대금의 '100%' 또는 '50%'를 별도 관리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신설된 규제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개정법을 일정 기간 유예 후 시행하고, 규율 강도도 경과규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상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미 관계부처 협의 등이 완료된 공정거래법 개정 관련 내용의 경우 국회와 법안 발의를 신속히 협의할 예정이다. 복수안을 검토 중인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관련해선 공청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이달 중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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