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 장기화로 응급실 의사 부족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근무하는 의사의 실명을 공개한 블랙리스트까지 등장했다.
9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현직 의사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아카이브(정보 기록소) 형식의 한 사이트에는 '응급실 부역'이라는 이름과 함께 응급실을 운영 중인 병원별 근무 인원이 일부 근무자 명단과 함께 게재됐다. '감사한 의사 명단'이라는 제목의 이 사이트는 운영자가 의료현장에 있는 의사들에 대한 정보를 제보로 확보해 매주 업데이트하고 있다.
새로 올라온 응급실 근무 의사 명단에는 "○○○ 선생님 감사합니다. 불법파업을 중단하고 환자 곁을 지키시기로 결심하신 것 감사합니다"와 같은 식으로 의사의 실명이 적혀 있다. 또한 "복지부 피셜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데도 응급의료는 정상 가동 중' 이에 큰 도움 주신 일급 520만 원 근로자분들의 진료 정보입니다", "인근 지역 구급대 및 응급상황에 처한 국민들에게 큰 도움 되리라 생각합니다" 등의 표현도 기재돼 있다.
비슷한 형식으로 "군 복무 중인 와중에도 응급의료를 지켜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응급실에 파견돼 근무하는 군의관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실명 역시 공개됐다. 최근 정부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포함된 군의관 15명을 응급실 운영이 어려운 병원에 배치했으나, 당사자들이 진료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며 근무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파견을 지원하거나 연장을 희망한 사례를 중심으로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들이 상세히 적혀 있다. 명단에는 "당직 서며 응급실 정상화를 위해 노력 중", "8명 중 7명이 병원에서 '쓸모없다'라고 판단돼 대체자 없이 지자체로 복귀한 와중에 유일하게 병원에서 쓸모를 인정받아 1개월 더 연장한, 정말 감사한 선생님입니다" 등의 표현이 쓰였다.
해당 블랙리스트는 전공의뿐 아니라 복귀를 독려하는 의대 교수, 전공의들의 자리를 메워주는 전임의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울러 주소를 알면 누구나 볼 수 있게끔 일반인에게도 공개돼 있다. 게시된 의사들은 실명 외에도 연락처, 출신 대학, 교제 중인 연인, 부친 이름, 학교폭력을 당한 이력 등 사적인 정보가 기재되기도 했다. "불륜이 의심된다", "싸이코 성향" 등 악의적인 표현도 함께 달린 것이 확인됐다.
보건복지부는 해당 사이트에 의사들의 개인정보가 공개된 사실을 경찰에 통보하고 수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사이트는 이전에도 존재했던 사이트로, 이미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며 "응급실 근무 군의관 등에 대한 신상정보가 악의적으로 추가된 만큼 경찰에 관련 내용을 알리고 수사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의사 파업 장기화에 따라 응급실 의사 부족 등으로 인한 '뺑뺑이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4일 열경련으로 쓰러진 만 2세 여아는 응급실 11곳으로부터 이송 거부를 당한 후 현재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광주의 한 학교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은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 대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중태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 역시 지난달 27일 "서울대 의대 출신 부친이 응급실 자리를 찾다 결국 돌아가셨다"고 알리며 상황을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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