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11시께 찾은 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택가. 서울도시가스 강북4고객센터 소속 김윤숙 가스 점검원이 마스크와 챙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마스크 위로 올라온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흥건했다. 이날 서울에는 폭염특보가 발효됐지만 김씨는 쉴 틈 없이 가스계량기를 찾아 건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검침 도중 건물 외벽에 놓인 에어컨 실외기 바람을 맞은 김씨가 현기증이 난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날 김씨가 검침과 점검을 맡은 가구는 총 300세대다. 김씨는 매달 혼자서 3600가구를 대상으로 고지서 전달과 도시가스 점검, 검침 업무를 수행한다. 그는 "가스 점검원이 된 지 올해로 18년 차"라면서도 "7월과 8월 무더위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국에 35도 안팎의 찜통더위가 지속되면서 가스 점검원 등 이동근로자들이 폭염 노동에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체감온도가 33도가 넘는 폭염 시기에는 무더위 시간대 옥외 작업을 중시하고 10분간의 휴식 시간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으나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근무할 경우 적절한 휴식과 물, 그늘진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예방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할 수 있다.
더욱이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 폭염 대비 근로자 건강 보호 대책을 수립해 폭염 단계별로 사업장에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예컨대 체감온도가 31도를 넘으면 물과 그늘, 휴식을 제공하고 체감온도가 33도를 넘어서면 매시간 10분씩 휴식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지속되는 무더위 시간대에는 옥외작업을 단축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해당 대책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인 탓에 현장에서는 작업 단축이나 휴식 없이 업무가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이날 김씨도 오전 10시부터 2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150여 가구를 방문했다. 가스 점검 업무는 특정 기간 안에 정해진 세대수 모두 점검을 마쳐야 하는 구조인 탓에 휴식을 취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때때로 휴식을 취하려 해도 마땅히 쉴 곳이 없다는 것 또한 문제다. 빌라 계단과 건물 주차장이 김씨의 유일한 쉼터다. 김씨는 60여 가구의 검침을 마친 뒤 "잠시 숨을 돌리겠다"며 필로티 건물 외벽에 기댔다.
타는 듯한 갈증은 미지근한 생수 한병으로 이겨낸다. 김씨는 "폭염 기간 3~4개월 동안 회사로부터 생수 구입비용을 3만원 지급받는다"며 "업무 도중 현기증이 나 이온 음료를 마시고 싶지만, 그보다 저렴한 생수 한병에 더위를 달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옥외 근로자 대상 폭염 대책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폭염과 관련해 물과 휴식, 그늘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며 "이 부분을 근간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무더위 시간대 오후 2시부터 옥외 작업 중지에 대한 부분을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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