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정보기관이 무너지고 있다. 정보사령부 소속인 A 공무원이 해외 파견 요원들의 신상 정보를 유출하는가 하면, 지휘관들의 고소전으로 인해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작전까지 모두 노출했다.
정보사령부는 어떤 곳인가.
▲ 대북 군사정보 수집 및 각 군의 공작원을 양성하는 군부대다. 북한으로 따지면 총참모부 정찰총국에 해당한다. 사령관의 계급은 소장이다.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의 태생은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정청 국방사령부 정보과를 모태로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 정보과를 만들었다. 1948년 11월에 육군본부 정보국 ‘정보대’로 개편했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에 육군본부 정보국에 공작과로 탈바꿈했다.
공작과는 첩보 분석을 담당하는 정보국 정보대인 ‘제1과’, 첩보 작전을 담당하는 정보국 공작과인 ‘제2과’, 방첩을 담당하는 정보국 방첩대인 ‘제3과’로 나눴다. 이후 제3과인 방첩대는 ‘특무부대’(CIC)로 분리되고, 제1과와 제2과는 ‘육군정보사령부’(AIC)로 통합된다. 해군도 1948년 해군 작전국 내에 정보과를, 공군은 1945년 정보부대를 창설했다. 1990년 9월 육·해·공군 정보부대를 통합해 발족했다.
지휘관 간 갈등은 어떻게 외부에 알려졌나.
▲정보사령부의 핵심 지휘관은 정보사령관인 A 사령관(소장·육사 50기)과 B 여단장(준장·육사 47기)이다. A 사령관은 B 여단장보다 기수는 낮지만, 계급이 높고 정보사령부를 책임지는 직책을 수행한다. 지난 5월 국방부 조사본부가 감찰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B 여단장의 '하극상 혐의'를 포착했다. 보고하는 과정에서 사령관을 면전에서 모욕했다는 것이다. B 여단장은 곧바로 직무에서 배제됐다. 이후 언론을 통해 사건이 알려졌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사실상 동맹 수준의 군사 조약을 체결하는 시기여서 논란이 커졌다.
지휘관들의 충돌은 언제부터?
▲양측 주장을 종합하면 사건의 발단은 올해 초다. A 사령관은 B 여단장에게 “민간단체에게 서울 충정로의 정보사 영외 비밀사무실, 이른바 안가(安家)를 빌려주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A 사령관은 “외부에서 제보받았다”고 설명했다. B 여단장이 “제보자를 알려주면 설명하겠다”고 했지만, A 사령관은 거절했다. 이에 B 여단장은 “그럼, 제보자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라고 하세요”라고 답했다.
수개월이 흐른 5월 22일 B 여단장은 이 비밀사무실을 한 민간단체가 사용하게 한 뒤, 이 사실을 A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A 사령관은 자신의 승인 없이는 지원할 수 없다며 다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B 여단장은 이 비밀사무실에 상주 공작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후 두 사람은 6월 6일 현충일 등 대외 행사에도 같이 참석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충돌이 없었다.
문제는 다음 날 벌어졌다. B 여단장이 재차 보고하면서 결재서류를 내밀었다. 결재서류에는 민간단체가 여전히 기재되어 있었다. A 사령관은 민간단체를 제외하라고 지시했다. B 여단장은 반발했다. A 사령관에게 “비전문가인 사령관이 개입하니까 공작이 안 된다”고 항변했다. A 사령관은 결재판을 던지며 “보고를 안 받을 테니 나가라”고 했다. 이후 B 여단장은 지난달 17일 사령관을 폭행 혐의로 국방부 조사본부에 고소했다. 사령관이 부하를 시켜 자신의 출퇴근 시간을 몰래 감시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도 추가했다. A 사령관 측은 반대로 B 여단장이 사령관에게 폭언해 모욕함으로써 상관 모욕 혐의가 있다면서 그를 국방부 조사본부에 수사 의뢰했다.
논란이 된 민간단체는 어떤 단체인가.
▲군사정보발전연구소라는 곳이다. 이 단체는 2010년 국방부 승인을 받고 만들어졌다. 초대 이사장은 서태석 전 정보본부장이 맡았다. 현 2대 이사장은 조보근 전 국방부 정보본부장이다. 조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이지(EG)그룹 회장과 육사 동기생이다. 육사 동기인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이 단체의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에 있지만 B 여단장이 관리하는 서울 충정로의 정보사 비밀 사무실을 월 1회 이상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군사정보발전연구소는 “자세한 내용은 국방부 조사본부에 문의하라”며 답변을 피했다.
이 단체와 정보사의 관계는?
▲사건 전말을 보면 표면상 연차가 높고 업무 전문가인 B 여단장이 상급자인 사령관을 무시한 모양새다. 사령관 지시를 따르지 않고 "비전문가" 운운한 언행은 일반적 관점에서 하극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B 여단장 측은 사안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6월 7일 말다툼에서 B 여단장이 거론한 '기획사업'이 그 근거다.
B 여단장의 고소장을 보면 민간단체가 블랙 요원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파이로 불리는 정보 요원은 외교관 등 공식 직함이 있는 ‘화이트’와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는 ‘블랙’으로 나뉜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영국 비밀정보국(MI6) 소속 블랙 요원이다. 블랙 요원의 일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경우가 많다. 블랙 요원은 존재 자체가 비밀이다. 민간인을 활용할 수도 있다. 활동을 더욱 은밀하게 할 수 있고, 유사시 정부와 관련성을 부인할 수도 있어서다. 이들 정체가 발각되면 파견국은 자기네 요원인 것을 부인한다.
민간단체가 공작 업무 수행할 능력이 있나.
▲군 안팎에서는 외부에 이미 노출된 장성급으로 구성된 단체를 활용했다는 자체에 의문을 나타낸다. 조보근 전 국방부 정보본부장은 취임하자마자 한 달 만에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 최초로 북한군의 변화된 전진 배치 현황을 공개해 화제를 낳았다. 2015년 조보근 전 본부장은 국정감사에서 "북한 핵실험은 최소 한 달 정도 전에 징후를 알아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북한은 다음 해 1월 제4차 북한 핵실험을 하며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군은 북한 핵실험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험 직후 ‘지진파가 감지됐다’는 외신 보도를 통해 뒤늦게 파악했다. 대북 정보 무능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현직 때도 하지 못했던 대북 공작 업무를 전역해서 한다는 게 가능하겠냐는 비판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정보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예비역 장성들이 있는 단체에 자금을 지원해주고 현 장성들이 제대 이후 거기로 옮겨가 예산을 타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고소장에 노출된 비밀 내용은?
▲B 여단장은 영외사무실은 공작업무 지원용이고 민간단체는 기획 공작인 ‘광개토 사업’의 핵심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법적으로 변호하기 위해 이런 내용을 담은 것인데 ‘기획사업’, 오피스텔 등에 대해 ‘너무 자세히’ 설명했다. 광개토 사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고소장에 나오지는 않지만, 한반도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던 광개토대왕 업적과 정보사 업무 성격에 비춰 중국 동북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대북 공작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군 안팎의 관측이다.
정보사는 군 장성들도 주요 임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인 부대다. 하지만 이번 고소전으로 일부일지라도 극비로 다뤄져야 할 공작팀의 실체, 공작 명, 공작 시기 등이 모두 드러났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나.
▲B 여단장은 고소장을 통해 A 사령관이 결재판을 자신을 향해 던졌다고 주장했다. B 여단장은 "누가 요새 이런 식으로 결재판을 던집니까. 소령, 중령한테도 결재판 던지는 사람이 없는데 저도 장군입니다"라고 항변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B 여단장은 이에 대해 “비합리적인 지시에 대해 직언을 했는데 결재판을 던진 것은 34년간의 군 생활에 가장 치욕적인 모욕이고 첫 폭행 피해”라고 전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사건이 접수된 B 여단장의 고소와 관련해 1차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안이 폭행 혐의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공작 임무에 민간단체를 활용한 것이 적절했는지, 민간단체와의 커넥션은 없는지, 추가로 자금이 흘러간 정황은 없는지 등도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군 고위 관계자는 “사건 전말을 조사하고 있으니 조사 결과를 보고 다음에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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