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 위기를 맞은 가운데, 베를린 시장이 일본 정부와의 갈등을 우려해 시민단체의 ‘위안부’ 교육 프로그램 기금 지원 중단을 위해 압박을 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후 해당 프로그램은 지원이 끊겼고, 이 과정에서 일본 대사관 또한 입김을 넣으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연합뉴스는 4일 독일 현지 매체 rbb방송을 인용해 독일 베를린 베그너 시장이 문화교육 프로젝트 지원 여부를 심사하는 자문위원회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 정부와 분쟁 가능성이 있다며 코리아협의회 인권교육 지원예산 삭감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베그너 시장이 시의 프로그램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자문위원회의 한 위원에게 연락해 일본 정부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며 코리아협의회의 신청을 거절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앞서 코리아협의회는 지원예산 87000유로(약 1억3000만원)를 신청해 예술·교육계 심사위원단의 1차 심사를 통과했으나 지난 4월 베를린시 내·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부결됐다.
기금은 예술가와 교육자로 이뤄진 심사단 평가를 거쳐 이를 토대로 11명으로 이뤄진 자문위원회가 결정해 지급하는 구조다. 자문위원회는 베를린시 상원 등 시 정부 내부 위원과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다. 평가 과정에서 심사단은 코리아협의회 프로젝트 지원을 추천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베그너 시장이 자문위원회에 연락한 뒤 이뤄진 표결에서 코리아협의회의 프로젝트는 지원 대상에 들지 못하게 됐다.
보도 이후 베를린시 당국은 "프로젝트 기금은 다수결로 결정되며 위원회는 공개되지 않는다”며 “위원회 결정에 대해 언급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rbb는 독일 주재 일본대사관이 베를린 시내 5성급 호텔에서 자문위원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며 예산 지원에 반대하도록 로비했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을 전한 소식통은 당시 대사관의 문화 분야 담당관이 처음엔 자문위원들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다가, 대화 주제를 바꿔 코리아협의회의 프로젝트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설득했다고 했다.
일본대사관은 로비 여부에 대한 rbb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코리아협의회의 인권교육에 대해 "일방적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다"며 "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독일 젊은이들에게 반일 감정을 심어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전반적인 성폭력 문제를 다룰 뿐 일본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교육이 아니다. 프로젝트 신청서에 일본과 관련한 내용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일본 측은 2020년 9월 베를린에 소녀상이 설치되자 이에 반발에 관할 미테구청이 철거를 명령했다. 코리아협의회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철거 명령은 보류됐다.
베그너 시장은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을 만나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기념물은 찬성하지만, 더 이상 일방적 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소녀상 철거를 시사한 바 있다.
소녀상 행정처분 권한이 있는 미테구청도 특별허가 기간이 2022년 9월 끝났다며 내달 28일 이후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2020년 베를린 소녀상 설립을 주도한 코리아협의회는 이듬해부터 '내(소녀상) 옆에 앉아봐'라는 이름으로 베를린 지역 청소년들에게 전시 성범죄를 비롯한 성폭력 전반을 다루는 인권교육을 이어왔다. 시민 후원을 통해 주로 운영되는 코리아협의회는 재정난 해소 및 역사 교육을 위해 베를린시 지원을 받아 왔고, 이번엔 6개 구 8개 청소년 단체와 함께 활동할 계획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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