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AI(인공지능)를 그룹 핵심 화두로 내걸고 ‘AI 외길’을 걷고 있다. 올해만 10차례 이상 AI 관련 행보를 했으며, 향후 그룹과 최 회장의 일정 역시 모두 AI에 집중되고 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4’를 시작으로 최소 10차례 이상 공식 석상에서 AI 경쟁력을 강조하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AI 빅샷(거물)’들과 7차례나 만나며 협력과 전략을 논의했다. SK그룹은 최근 리밸런싱(사업재편) 과정을 통해 그룹 내 중복된 계열사와 투자를 정리하고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SK 경영진들은 ‘운영 개선’을 통해 그룹 체질을 바꾸고 AI를 중심으로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올초부터 최 회장은 AI 산업의 잠재력을 강조하며 그룹의 방향성을 고민했다. 지난 1월 CES현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선 "AI는 이제 한 시대가 시작한 것이고 어느 정도 임팩트와 속도로 갈지 예측하지 못 한다"며 "챗GPT가 나온 이후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가 일어나다 보니, 너도 나도 이 파도를 타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브레이크스루는 컴퓨터 시스템의 개발 프로젝트 등에서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후 각종 전시회와 간담회 등에서 최 회장이 드러낸 가장 큰 고민과 희망은 AI에서 나왔다.
올해 최 회장이 만난 AI 업계 주요 인물들은 모두 시장을 선도하는 거물들이다. 1월에 한국을 찾은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의 회동을 시작으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웨이저자 TSMC 회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6월 미국 출장에서는 올트먼 CEO를 다시 만나고, 사티아 나델라 MS CEO, 앤디 재시 아마존 CEO, 팻 겔싱어 인텔 CEO 등과도 연달아 회동했다. 최 회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을 앞세워 이들 기업과 AI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출장 당시 최 회장은 "AI라는 거대한 흐름의 심장 박동이 뛰는 이곳에 전례 없는 기회들이 눈에 보인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SK그룹은 챗GPT 등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촉발된 ‘AI혁명’의 성장세에 올라타겠다는 전략이다. 생성형 AI는 일상은 물론 산업계 전반을 바꾸고 있으며, 제품 설계 개선, 프로세스 최적화, 품질 관리 등 제조·서비스 과정을 변화시키고 있다. 리서치 전문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AI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02억 달러(약 200조원)에서 2030년에는 1조3452억 달러(약 1800조원)로 9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글로벌 AI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36.8%에 달할 전망이다.
SK그룹은 2026년까지 80조원의 재원을 추가로 확보하고, 향후 5년간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HBM 등 AI·반도체 분야에 10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한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향후 폭발적인 수요가 예상되는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에 5년간 약 3조4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룹 내 주력 에너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역시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전략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친환경 에너지 생산·공급·저장 솔루션이 필요하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강점을 결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SK그룹은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AI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SK텔레콤의 ‘에이닷’ 등 AI 서비스와 에너지저장장치(ESS)·신재생에너지 솔루션을 패키징화해 북미 등 AI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시장에 공급할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계획은 SK그룹이 AI와 에너지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AI 혁명 시대에 발맞춰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AI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수요를 친환경적으로 충족시키면서도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SK그룹은 지속 가능한 발전과 기술 혁신을 동시에 이루고자 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AI 메모리 경쟁력을 기반으로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AI를 점찍었다"며 "에너지, 플랫폼 등 AI와 관련한 그룹의 역량까지 집중하는 것은 그룹 오너로서 중요한 시기에 새시대의 흐름을 보고 결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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