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대법관 종신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법관에 대한 윤리 규정을 도입하는 법 개정도 함께 추진한다. 최근 보수 대법관이 포진한 대법원에서 면책특권을 인정받은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는 동시에, 3개월 여 앞으로 다가 온 미 대선에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란 관측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보도자료와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헌과 대법원 개혁 추진 방침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난 '누구도 법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헌법 개정안 발의를 촉구한다"며 "이는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어떤 면책특권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왕이나 독재자가 아닌 법의 나라"라며 "난 대통령의 힘은 제한적이며 절대적이지 않다는 미국 건국자들의 신념을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신제인 연방 대법관 임기와 관련해 "난 대통령이 2년마다 18년 임기의 대법관을 1명씩 임명하는 제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임기 제한은 구성원을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 명의 대통령이 다음 세대에 걸쳐 법원의 구성을 현격히 바꿀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종신직인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다. 트럼프 정부 때 3명의 대법관이 임명된 것을 계기로 현 대법원은 보수 성향이 6명으로 진보 성향(3명)보다 많다. 보수 대법관 위주로 재편된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4건의 사건으로 형사 기소된 것과 관련해 대통령의 재임 중 공적 행위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등 논란이 되는 판결을 내놨다. 또 보수 성향 대법관 중 새뮤얼 얼리토는 2020년 대선 결과 불복을 상징하는 '거꾸로 성조기'를 집에 게양했고, 클래런스 토머스는 공화당 후원자 등으로부터 호화 여행을 비롯한 향응을 제공받아 논란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를 비롯해 법적 선례를 뒤집는 위험하고 극단적인 판결에 더해 윤리의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앞서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연방 차원에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인 2022년 공식 폐기했다.
그는 최근 대법원의 대통령 면책특권 판결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6대3 판결로 대통령에게 재임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부여한 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는 뜻"이라며 "2021년 1월 6일처럼 미래 대통령이 폭력적 군중을 선동해 의사당을 습격하고 평화적 권력 이양을 막는다 해도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해 지지자들을 부추겨 의사당에 난입, 폭동을 일으킨 1·6 사태를 거론한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예약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대법원이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사법 개혁을 촉구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별도 성명을 통해 "대법원은 오랜 판례를 반복적으로 뒤집는 결정과 수많은 윤리적 논란으로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오늘날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며 "이것이 내가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대법관의 임기 제한, 연방판사와 같은 구속력있는 윤리 규정 준수 등의 개혁을 통과시킬 것을 의회에 촉구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도 법 위에 있어선 안 된다"며 "우리는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면책특권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개혁은 법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며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개헌은 상·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개헌안을 발의한 뒤, 전체 주(州) 4분의 3 이상에서 비준 등의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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