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을 수행했던 이상인 부위원장이 26일 야당의 탄핵 압박에 자진사퇴했다. 여야의 공영방송 주도권 싸움에 방통위 수장이 잇달아 물러나면서 방송·통신·미디어 정책 전반을 관할하는 방통위의 손발이 꽁꽁 묶였다.
이 직무대행은 26일 오전 7시40분께 정부과천청사 집무실로 출근했다. 이로부터 2시간 후 윤석열 대통령이 이 직무대행의 면직안을 재가한 사실이 전해졌고, 이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10시40분께 별도의 퇴임 행사 없이 청사를 빠져나왔다.
이 직무대행은 1층 로비에서 직원들과 만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쟁의 큰 수렁에 빠져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상임위원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 죄송하다"며 "방통위가 정상화돼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3개월 재직기간에 위원회 업무를 묵묵히 열심히 수행해주신 직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말을 전했다. 이 직무대행은 일부 직원과 악수를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차에 올라탔다.
이 직무대행은 지난해 5월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위원으로 임명됐다. 방통위 2인 체제 속에서 YTN 최대주주 변경, 공영방송 이사회 선임 계획 안건 등 굵직한 의결과 업무에 참여했고 이동관, 김홍일 위원장의 자진사퇴로 두 차례 직무대행을 맡았다.
야당은 방통위 2인 체제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MBC 등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 추진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다. 세 차례의 탄핵 추진에도 불구하고, 야권에선 "탄핵 열차는 계속 달린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들린다. 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방통위와 국회는 후보자의 자격과 전문성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언론 역시 후보자의 자질, 도덕성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방송·통신 산업 육성에 대한 취재와 보도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생각하면 지금이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업계 관계자는 일련의 사태를 보며 "글로벌 방송 사업자와의 경쟁으로 인해 국내 방송산업이 힘든 상황인데, 정쟁에만 매몰돼 중요한 정책적 논의는 진행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수치로 보는 현실도 녹록지 않다. 티빙, 웨이브, 왓챠 등 3개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해마다 총 2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지난해 국내 방송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4.7% 줄면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특히 광고 매출이 19% 급감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제작비 폭증에 시대와 맞지 않은 규제까지 발목을 잡고 있어 업계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국내 방송·미디어산업이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될 거란 예측까지 나온다. 방통위는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K-미디어·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도와 글로벌 미디어 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가짜뉴스 역시 방통위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소모적인 싸움이 계속될수록 슬며시 웃는 건 거대 자본력으로 국내 미디어 시장을 공략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방송 유통과 콘텐츠 제작 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심화될수록 국내 사업자들은 경쟁력을 잃고, 시청자 역시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할 기회를 잃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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