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스라엘)의 승리가 여러분(미국)의 승리다."
미국 의회를 찾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충돌'로 정의하며 미국의 신속한 군사 지원을 촉구했다. 의회 연설에 나선 그는 국회의사당 밖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는 이들에 대해서는 "이란에 유용한 멍청이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오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된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문명의 승리를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하마스 배후에 있는 이란이 미국을 주적으로 꼽고 있음을 언급하며 "우리의 적은 여러분의 적이다. 우리의 싸움은 여러분의 싸움이다. 그리고 우리의 승리는 여러분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타협은 없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을 "문명 간의 충돌이 아닌 문명과 야만의 충돌"이라고 정당화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군사 능력과 가자지구 통치를 소멸시키고 모든 인질을 집으로 데려올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그것이 완전한 승리이며 그 이하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히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오늘날 이스라엘이 문명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나 역시 미국에 호소한다"면서 "우리에게 더 빨리 도구를 주면, 우리는 더 빨리 일을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미국에 신속한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라디오 연설에서 한 문장(Give us the tools, and we will finish the job)을 인용한 발언이다.
아울러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엄청난 중상모략"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자신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한 국제형사재판소(ICC)를 겨냥해 "이스라엘의 손에 족쇄를 채워서 우리의 자위권을 막으려 하고 있다"면서 "만약 이스라엘의 손이 묶이면 다음은 미국이 될 것이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테러와 대항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스라엘의 작전에 따른 가자지구 내 민간인 피해자는 "실질적으로는 없다(practically none)"면서 하마스가 주민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전쟁 이후 새로운 가자지구에 대한 비전도 제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재정착하려는 것이 아니다"면서 "테러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자지구가 다시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결정적인 안보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일본 등에 적용된 '비무장화와 탈급진화'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가자의 비무장화와 탈급진화는 안보, 번영, 평화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에이브러햄 협정을 언급하면서 중동 지역에 이러한 안보 동맹 구축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에이브러햄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도록 중재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이들에 대해 "강간범과 살인자 편에 선 것"이라고 원색적 비난도 쏟아냈다. 그는 이란이 반이스라엘 시위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점 등을 언급한 뒤 시위대에 "이란에 유용한 멍청이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의회 연설에 맞춰 의사당 밖에는 '전범' '집단학살 총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든 5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집결해 시위를 벌였다.
네타냐후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은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테러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3번째 연설이기도 하다. 약 52분간 이뤄진 이날 연설에서 휴전 협상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발언이 나오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지원에 사의를 표명하는 한편,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언급했다. 그의 사의 표명에 나오자 의사당 내에서는 기립박수가 몇차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오는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당연직 상원 의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연설에 불참했다. 선거 운동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앞세웠지만 차기 대권 주자로서 친이스라엘 기조였던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정책과 거리를 두며 이탈한 지지층 재확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해리스 부통령 외에도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비롯한 수십명의 민주당 의원이 연설 불참을 통해 항의 의사를 표했다. 의사당 내에서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라시다 틀라이브 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이 '전범', 집단학살 혐의'라고 양면에 적힌 검은색 팻말을 들고 연설 내내 앉아있는 모습도 확인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별도의 회담 외에도 25일 해리스 부통령과 만날 예정이다. 이후 26일 플로리다주로 이동해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회담한다.
한편 하마스는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 직후 "근거 없는 선전과 거짓말"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하마스는 성명서를 통해 "가자지구에서 여성, 어린이, 노인에 대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핑계"라고 주장했다. 독립 팔레스타인 정당인 팔레스타인 내셔널이니셔티브의 무스타파 바르구티 대표 역시 "거짓말로 가득한 연설"이라며 "이슬람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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